사인방의 몰락과 덩샤오핑의 귀환 - 역사적 대전환”의 시작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은 문화 대혁명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었다. 지도부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고, 이로써 ‘사인방’이 쿠데타 혐의로 축출되며 정치적 정리는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념의 단절은 아니었다. 덩샤오핑은 복권과 함께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식 현대화〉를 기치로 내건다. 이른바 〈4대 현대화〉, 즉 농업, 산업, 국방, 과학기술의 현대화는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었지만, 그 토대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 체제였다.
1978년 제3차 중앙 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개혁 개방〉이 공식화되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지만, 디쾨터는 이 전환을 〈권력 설계의 재편〉으로 본다. 기존 체제를 허물지 않고, 정밀하게 조율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국유자산은 여전히 당의 통제 아래 있었고, 은행과 시장은 권력의 논리에 따라 작동했다. 겉으로는 개혁이었지만, 그 본질은 “계획 경제의 골격 위에 세운 통제된 성장”이었다.
2. 경제특구와 시장의 기적 -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이름의 기만
선전과 주하이에 경제특구가 설치되고, 농촌에는 계약 책임제가 도입되면서 중국은 ‘기적의 나라’로 부상한다. 1985년 산업 성장률은 22%에 달했고, 도시화와 산업화가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디쾨터는 이 시기의 성장 뒤에 감춰진 회색지대를 파헤친다. 이중 가격제, 관료-기업 유착, 회계 조작, 뇌물과 인맥은 ‘성장 엔진’의 실체였다.
경제는 팽창했지만, 그 구조는 혼란스러웠다. 국영 은행은 무제한에 가까운 대출을 집행했고, 인플레이션은 1984년에만 23%를 기록했다. 디쾨터는 이를 “통제된 과잉 생산과 투기의 폭주”라 지적한다. 권력이 시장을 통제하고, 당이 경제를 설계하는 체제에서는 진정한 시장 원리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는 시장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3. 톈안먼 사태와 정치 개혁의 봉쇄 - “개혁이라는 단어가 숨긴 것들”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정치 개혁의 가능성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시민과 학생 수십만 명이 모여 표현의 자유, 법 앞의 평등을 요구했지만, 당 지도부는 이를 ‘반혁명 폭동’으로 규정했고, 인민해방군은 수도를 무장 점령했다.
디쾨터는 이 사건을 “중국의 미래가 봉인된 순간”이라 부른다. 그날 이후 중국은 정치 개혁을 폐기하고, 경제 성장만을 강조하는 전략을 본격화했다. 정권은 물질적 이익과 정치적 침묵을 맞바꾸는 ‘거래’를 체제의 기본 원리로 삼았다. 이때부터 중국은 개혁을 약속하는 국가에서, 개혁의 환상을 활용하는 국가로 전환했다.
4. WTO 가입과 세계화의 이면 - 자유 없는 성장의 허상
1997년 홍콩 반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는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디쾨터는 이를 ‘전략적 이중성’이라 지적한다. 외형적 개방은 강화됐지만, 정치적 자유는 여전히 철저히 차단되었다.
중국의 고성장은 부채 위에 세워졌다. 국영 은행은 적자를 감춘 채 대출을 이어갔고, 지방정부는 부동산 개발로 재정을 메우며 버블을 조장했다. 통계는 조작됐고, 투자와 소비는 불균형하게 팽창했다. 무엇보다 시장에는 실질적 소유권도, 독립적 사법 제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디쾨터는 “정치적 자유 없는 경제는 허상”이라고 단언하며, 이 시기를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경제 기회를 전략적으로 운용한 시기”로 규정한다.
5. 감시 국가의 진화 - 기술로 정밀화된 권위주의
2000년대 들어 중국은 올림픽 유치, 외환보유고 1위 달성 등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감시와 통제가 제도화되었다. 모든 토지와 자산은 여전히 국가 소유였고, 언론은 완전히 통제되었으며, 인터넷과 캠퍼스조차 감시의 그물망에 들어갔다.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권위주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다. 그는 “중국은 서구 모델을 따르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사법·언론·기업에 대한 전방위 통제를 강화했다. 홍콩의 자치는 해체되었고, 당은 국가를 이념적으로 완전히 포섭했다. 디쾨터는 이를 “감시와 통제가 제도화된 새로운 전체주의”로 정의한다. 중국은 더 이상 변화 중인 국가가 아니라, 변화의 주체가 되려는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정말 변했는가, 아니면 변한 척하고 있는가?”
『마오 이후의 중국』은 단지 경제성장의 궤적을 좇는 연대기가 아니다. 그 이면에 도사린 권력의 재편, 감시의 정교화, 그리고 ‘개혁’이라는 수사의 역사를 고발한다. 디쾨터는 방대한 당 문서, 내부 기록, 회고록을 토대로 “중국의 개방은 민주화를 향한 진화가 아니라 통제의 진화였다”고 결론짓는다.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의 유산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체제를 변형시켜 왔다. 외형적 개방은 내부 억압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었고, 시장은 자유가 아닌 통제를 위한 장치로 기능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권력은 더욱 집중되었고, 정치적 자유는 끝내 허용되지 않았다. 디쾨터는 독자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중국은 과연 ‘진짜’인가? 정치가 경제를 이끄는가, 경제가 정치를 좌우하는가? 세계 질서를 이끄는 하나의 모델로 부상한 중국. 그 내부를 꿰뚫기 위해 이 책은, 냉정하고도 정직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