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언덕을 오르느라 힘들었겠지만,
덕분에 우리는 더 멀리까지 보게 됐다.” _김연수(소설가)
“사람과 책에 대한 이 아득한 사랑이
다음엔 또 어느 방향을 향할까?” _정세랑(소설가)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하는 일은
결국 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미쳐서 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믿고 떠났습니다
내가 사랑한 세계를 바다 건너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세계는 분명 당신에게도 다정할 테니까요
어린 시절 한국문학에 푹 빠져서 살다가 이십대 초반에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그러다 ‘어라, 한국문학도 이것 못지않게 재밌는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맨땅에 헤딩하듯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를 차린다. 누구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자랑스러운 한국 작가들을 일본에 알린다. 만인의 인생작인 대하소설 『토지』를 전권 완역해 출간한다. 한국 책을 출간했으니 일본 독자들과 한국 작가가 만나는 장(場)을 열기 위해 한국 전문 책방을 차린다. 한국 책 시장이 더 커지길 바라며 도쿄 한복판에서 한국 책만으로 이루어진 이틀간의 도서전을 매해 연다.
저자 김승복이 지나온 길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쉽게 적었지만 그가 일본에서 무명이었던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소설가 한강’이 될 때까지 믿고 기다린 시간은 14년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박경리 소설가의 『토지』, 한국의 방언과 근대문화의 보고인 전 20권짜리 도서를 일본어로 완역해낸 시간은 10년이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형 문예출판사들이 대거 참가하는 ‘K-BOOK 페스티벌’은 올해로 7년째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저자의 발자취를 보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을까? 수많은 제약이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굳건하게 계속하는 마음을 그저 ‘좋아한다’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 감정이 묵직한 원동력으로 치환되는 방법에 대해 저자는 “내가 아름답다 느낀 이 세계가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다울 것이라 믿고, 그냥 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럼 언젠간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그 믿음, 적어도 틀리진 않았다”는 응답을 받는다고.
누구든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실패한 경험이 성공한 경험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결과가 눈앞에 없는 것과 실패는 다르다. 일단 책이 제대로 된 옷을 갖추고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것 아닌가. 거기서 많이 팔리면 더더욱 성공한 것이고.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 일은 결국 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 147쪽
인생에서 큰 결심을 한 사람에게는
걱정보다 응원이 필요하다
약 20년 가까이 한국과 일본의 출판계를 오가며 만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써보자는 초기의 의도대로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늘 환대하며 책거리를 도와주었던 서점의 사장님들, 언제나 일 벌이기 좋아하는 대표에게 힘을 보태준 책거리와 쿠온의 직원들, 어딘가 엉뚱한 면이 있는 손님들, 좋은 작품을 잘 만들자고 합심해준 출판편집자들과 북디자이너 그리고 마케터들은 물론, 그 마음에 응답하기 위해 함께 발 벗고 나서준 한일 양국의 작가들까지. 한 페이지 너머 한 페이지마다 들어본 적 있는 작가 혹은 작품, 서점 그리고 출판사들이 연속으로 등장한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온 독자라면 반가울 얼굴들이다. 저자는 그들의 이름과 작품, 공간을 하나하나 귀하게 소개하며, 이들이 손내밀어준 ‘좋아하는 마음’을, 그리고 그 마음이 어떻게 “‘한국문학은 재밌다’는 세계를 자신과 함께 만들어왔는지”를 설명한다.
그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분명 평탄하지 않았다. 자신도 출판사도 무명이었던 시절에 이 작품을 한번 읽어봐달라 독자에게 소개하고, 유명한 국내작품의 번역출판을 우리에게 맡겨달라 요청하기란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그는 성실한 애정을 기반으로 지금의 세계를 일구어왔다. 18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오늘도 “내가 그걸 좋아하니까”라는 마음 하나에 기대어 바쁘게 한일 양국을 오간다.
지금에 와 “결과가 눈앞에 없는 것과 실패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저자의 곁에는 수많은 마음들이 있었다. 때로는 “준비 부족이 여실했다”는 따끔한 조언이었다가, 때로는 “힘들다 싶을 때 연락해요. 많이는 아니지만 얼마까지는 도울 수 있어요”라고 툭 건네는 응원의 형태였다. 살포시 등을 밀어주는 그 손길을 받아 그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저자는 이제 그 마음을 밖으로 더 내놓으려 한다. 어디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지 모르는 제2의 김승복, 제3의 김승복이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도록. 자신이 내보인 마음에 돌려받은 마음까지 보태 더 큰 응원을 보낼 것이다. ‘K’라는 세계가 끝을 모르고 뻗어나갈 수 있도록.
그러니 새로운 것을 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응원이다. 책임감 없는 낙관주의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함께하겠다는 응원. 적어도 나만은 걱정보다는 응원을 보내주겠다. 열기를 더해 어느 아름다운 세계가 끝을 모르고 커질 수 있도록. - 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