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의 책소개
별이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은
지상에 얼마나 많은 서러운 섬이
홀로 고요히 노래를 부르는지 알기 때문이다
―「섬」 부분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사랑과 그리움의 시인 곽재구가 7년 만에 여덟번째 시집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를 문학동네시인선 117번으로 출간한다. 우리 땅에 지천으로 흩어진 풀꽃 같은 헐벗고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삶에 대한 끈끈한 진실’을 노래해온 곽재구 시인. 고통스러운 풍경을 묘사할 때에도 맑고 순수한 서정성으로,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끝내 와야만 하는 희망의 세상을 지금 여기에 불러냈던 그. 아물지 못할 우리의 상채기들을 수선해내는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 모두는 인간의 따뜻함을 조금씩은 더 희망하게 되었으리라. 그렇게 절망보다는 희망을, 고통보다는 사랑을 노래하기 위하여 힘써온 곽재구가 일별해낸 민중의 풍경은 80년대를 버텨줄 한줄기 서정성이 되어주었다. 강언덕에 누워 마을 하나하나의 꿈과 사랑과 추억의 깊이를 만나고 그것을 시의 밑그림으로 삼았던 곽재구. 아주 오래전부터 한 강을 사랑해왔다고, 그 강의 이름은 내게 늘 처음이었으며 열망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 그에게 고요하게 흘러가는 강물소리는 삶이 흘러가는 흔적이자 이 땅의 모든 서럽고 쓸쓸한, 가슴 먹먹한 목소리였다. 그가 삶의 밑바닥에서 퍼올린 마르지 않는 사랑은 순천(順天)의 샛강 동천을 타고 흘러 유년의 바다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보인다.
가을에 사랑하다 헤어지면 봄이 온다(「나와 물고기와 저녁노을」). 눈물이 소금 되어 반짝일 만큼 우는 사람이 많지만 세월은 그뒤 초원에 무지개를 걸어둔다(「세월」)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에게 “눈물을 사랑할 수 없지만/ 생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은 없”(「배낭여행자」)기에 강물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물속에서도 꿈은 흘러가는지 묻는다(「어린 물고기들과 커피 마시기」). 시인은 노래한다. “힘들어도 생명은 전진해야 한다”고. “흐르는 물이 얼음으로 뭉쳤다가 봄날의 자욱한 꽃향기를 만나듯”(「징검다리」). 이번 시집의 끝엔 특별하게 해설 대신 ㄱ부터 ㅣ까지 모국어의 자모에 대한 시인의 산문이 실렸다. 곽재구에게 있어 모국어는 “밥이고 사랑이고 청춘이며 꿈”이다. 그의 산문은 “시가 뭐야?”라는 질문에 답하는 “꿈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인지 모른다. 이 ‘영원한 본향’을 향해 시는 오늘도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