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레시피를 읽고 어떤 사람은 마음을 읽는 책
암 투병중인 아내를 위해 남편이 요리를 시작한다. 아내는 병이 깊어 어떤 음식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다. 서툰 솜씨라도 남편이 마음을 다해 만든 음식만 겨우 입에 댈 뿐이다. 남편은 독서와 글쓰기가 직업인 인문학자, 요리라고는 라면을 끓여본 것이 거의 전부인 남자다. 그에게 부엌은 커다란 도전이다. 조리대 앞에 설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한번 해본 요리도 다시 하려면 헛갈리고,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을 빠뜨리기 일쑤이다. 그래서 시작한 메모, 그 메모가 자라서 독특한 요리 에세이가 되었다. 언뜻 조리 과정만을 담담히 기록한 레시피 모음 같지만 숨어 있는 슬픈 사연 때문에 읽는 이는 수시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처음에는 콩나물국이나 볶음밥 같은 간단한 요리를 해내고 뿌듯해하지만 어느덧 아귀찜, 해삼탕 같은 고난도 요리를 해내기까지 한다. 물론 아귀찜의 콩나물은 아삭하지 않고 해삼탕은 류산슬을 더 닮은 것 같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메뉴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집에서 늘 먹는 밥과 반찬이지만 만들고 먹는 과정에서 작은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그런 요리가 60여 가지가 된다. 조리 방법과 과정이 소상히 묘사되어 있어 ‘오늘 뭐 먹지?’ 하는 힌트를 얻거나 조리 참고서로 삼을 사람도 있을 테지만, 요리 설명도 문학적인 에세이처럼 읽히는 우아한 문장에 담긴 ‘요리하는 마음’에 공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저자가 조리 과정을 설명하면서 가장 자주 쓰는 단어는 ‘간단하다’이다. 실제로는 간단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스무 가지가 넘는 채소를 일일이 손질해 세 시간 이상 곤 채소 수프를 주자 아내가 뭘로 만들었느냐고 묻는데 그때도 그는 “간단해”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버거운 일을 가볍게 만들고 싶어 자신에게 거는 주문, 허풍이나 농담이리라. 우스개도 자주 등장하고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먹는 순간의 기쁨이 주로 그려진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하듯이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의 순간을 길게 늘이고 싶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고통보다는 따뜻한 위로와 힘을 전해 받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아픔과 슬픔이 배어나오는 것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아내에게 남겨진 시간은 길지 않다.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이면 뭐든 만들어주고 싶지만 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통증이 쓰나미처럼 불시에 몰려와 응급실에 실려 가느라 완성된 음식을 맛보지 못하거나 요리 자체가 중단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