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철학의 언어로만 해석되던 사후 세계와 윤회,
임사체험 연구를 시작으로 과학이 응답하다!
죽음은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두려워하고 탐구해온 수수께끼다. 죽음과 관련한 질문은 종교와 문학, 예술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과학 또한 그 물음에 접근하고 있다. 죽음이 과학적 고찰의 대상이 된 것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박사가 1969년에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역시 정신과 의사였던 레이먼드 무디 박사가 1975년에 ‘임사체험’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이 주제는 더 이상 신비나 미신이 아닌 의학과 과학의 언어로 연구되는 주제가 되었다.
사후 세계와 윤회를 둘러싼 논쟁들:
열린 시각으로 보자 vs 절대 있을 수 없어!
임사체험과 관련해서는 퀴블러-로스 박사가 보고한 사례들이, 그리고 윤회와 관련해서는 에드가 케이시가 라이프 리딩(life reading) 가운데 이야기했던 사례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경험담이 보고되었지만, 이들이 과연 진실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일부는 사후 세계와 윤회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히 접근하는 반면, 또 다른 일부는 대안 이론을 통해 사후 세계와 윤회를 적극적으로 부정한다. 핵심 쟁점은 이러한 사례들이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객관적 증거’로 간주될 수 있는가에 있다.
무조건 믿지도, 무조건 부정하지도 않는다!
‘호의적 회의주의’라는 과학적 태도로 사후 세계와 윤회의 가능성에 접근하다
물리학자인 저자 김성구 교수는 임사체험과 윤회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고, 이를 둘러싼 과학계와 의료계의 논쟁을 폭넓게 검토한다. 저자는 우리가 ‘과학적 진실’로 여기는 많은 명제들, 예컨대 ‘의식은 두뇌가 작동할 때만 존재한다’는 주장 역시 더이상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임사체험이나 윤회를 입증하는 객관적인 사례를 무시한 채 기존 이론에만 근거해 새로운 현상을 부정하는 태도는 오히려 ‘현대적 미신’에 가까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동시에 저자는 명확한 검증 없이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고대적 미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극단을 모두 경계하며, ‘호의적 회의주의’를 갖추는 것이 과학적 탐구에 필요한 태도임을 강조한다. ‘호의적 회의주의’란 낯선 것을 철저히 검토하되, 그것의 가능성만큼은 열린 마음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저자는 ‘호의적 회의주의’의 입장에 서서 임사체험과 윤회에 대해 과학적으로 고찰했으며, 그 결과를 근거로 사후 세계와 윤회가 진실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사건의 흐름으로 존재하는 나, 즉 무아(無我)에 대한 이해는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나’와 맞닿아 있다
임사체험과 윤회가 진실이라면, 그 경험의 주체인 ‘나’는 과연 무엇인가? 저자는 이 질문을 불교의 무아 개념과 양자 역학의 세계관을 통해 고찰한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를 부정하지만, 인과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으로서의 나’는 인정한다. 그리고 윤회하는 ‘나’ 역시 동일성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연속성으로서의 ‘나’를 말한다. 이 관점은 양자 역학의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 고전 역학은 ‘존재 중심’의 세관을 지지했다면, 양자 역학에서는 ‘사건 중심’의 세계관을 지지하며, 사건들로부터 존재가 구성된다고 본다. 즉, 양자 역학의 관점에 선다면 ‘나’는 명사적 존재가 아니라 인과로 연결된 동사적 사건의 집합이 된다. 양자 역학으로 설명되는 ‘나’는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한 전자와 비슷하며, 따라서 상보성의 원리와 이중성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이처럼 저자는 불교의 ‘무아’가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나’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무아·윤회의 이치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더 고결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나’는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상주(常住)와 단멸(斷滅)을 떠난 중도(中道)로서의 ‘나’가 된다. 유(有)도, 무(無)도 아닌 공(空)으로서의 ‘나’가 윤회하는 것이다. 이 여정은 해탈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생과 사를 반복하며, 스스로 지은 모든 업에 대한 과보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윤회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한 생명 순환을 넘어, 삶 전체를 책임지는 윤리적 자각을 의미한다. 윤회에 대한 눈뜸이야말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품격을 갖추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우주적 법칙에 입각하여 수립된 윤리는 절대적이고 완성된 윤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러한 윤리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