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기업을 어떻게 다시 뛰게 하는가?
- 문제를 진단하고 판을 새로 짜는 ‘투자자’에 주목하라
“기업의 재도약 뒤에는 보이지 않는 CEO, 사모펀드가 있었다.”
기업과 경제를 다시 뛰게 할 혁신적인 자본과 거버넌스 이야기
기업도 사람처럼 성장 → 정체 → 쇠퇴의 사이클로 움직인다. 핵심은 엔진이 꺼진 순간, 누가 문제를 진단하고 어떻게 불씨를 살리는가에 있다. 저자 한영석은 경영 컨설팅, 증권사, 국부펀드에서 수많은 투자를 실행해온 결과, “경영에 깊이 개입하는 사모펀드의 투자자들은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CEO다”라는 결론에 닿는다.
사모펀드가 자본만 투입한다는 통념과 달리, 이들은 업종별 ‘패턴 인식’ 능력으로 기업의 병증을 찾아내고, 거버넌스·인센티브·실행력 세 축을 동시에 설계한다. 그 결과 오래된 PC 회사로 남을 뻔했던 델이 IT 인프라 플랫폼으로 환골탈태하고, 카지노 매출이 제로였던 코로나 위기 속 베네시안 리조트가 7억 달러 EBITDA를 실현하는 자산으로 되살아났다.
KIC가 직접 만난 글로벌 ‘장기 초대형 자본’의 작동 방식
한국투자공사(KIC)는 2,000억 달러를 운용하는 글로벌 장기 초대형 국부펀드다. 저자가 최정상 사모펀드들과 공동투자·동행 실사를 하며 목격한 것은 “돈을 넣고 끝”이 아닌 파트너십 자본의 진화였다.
KKR, 실버레이크, 아폴로 같은 운용사는 경영진과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구조부터 손본다. 예컨대 실버레이크는 하드웨어 업체 델을 인수할 때 “기존 영업망 위에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얹어 종합 IT 기업으로 점프한다”는 청사진을 먼저 그렸고, 델 이사회가 동의할 때까지 8개월 동안 설계·협상을 반복했다. 이런 긴 호흡이 가능한 것은 사모펀드 같은 ‘장기 자금’은 단기 차익이 아니라 기업 체질을 바꾸는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20개 성공·실패 사례로 해부한 ‘혁신 설계도’
책은 수치로 검증한 10대 베스트 프랙티스를 세 갈래(①사업 모델 혁신, ②프로세스 개선, ③플랫폼 확장)로 분해하고, 그 밖에도 한국과 미국에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돌아보며 이유를 제시한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모펀드의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자, 한국의 금융계와 투자자를 향해서는 자본이 어디까지 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델·베네시안 리조트·버거킹은 각각 “제품군 확대→서비스 기업”, “팬데믹 위기 자산 재가동”, “낡은 브랜드의 혁신”으로 재도약했다. 반면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짊어진 홈플러스, ‘오프라인 투자의 역풍’을 맞은 일부 리테일 딜은 실패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 “MBK가 홈플러스를 더 낮은 가격에 인수해 차입 부담을 줄였다면 어땠을까?” 같은 저자의 날카로운 복기 덕분에 독자는 ‘성공 공식’과 ‘경고등’ 둘 다를 가져갈 수 있다. 더 나아가 48포티ㆍ씨세이프ㆍLTS처럼 지속가능성·사회적 가치를 수익과 함께 키운 사례는 “사모펀드 = 먹튀” 프레임을 뒤집는다.
한국 경제와 금융을 위한 10가지 제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각인된 ‘사모펀드는 위험한 투기 세력’이란 서사는 더 이상 정확하지 않다. “글로벌 사모펀드는 더 이상 단기 차익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 투명성·책임·장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저자는 거버넌스, 성과 연동 인센티브, 공적 기금의 투자 기준 등 10가지 구조 개혁을 제안한다.
예컨대 모든 연기금의 수익률을 한눈에 보는 오픈 포털을 만들면 운용 역량이 투명하게 비교되고, 잘하는 기관이 선진 기법을 확산하는 시장 자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결론은 명료하다.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결정한다.” 사모펀드를 무작정 경계할 때가 아니라, 어떤 펀드와 손잡고 어떤 변화를 설계할지를 묻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빅 픽처’에서 내 포트폴리오 전략을 배우다
사모펀드는 거대한 거래만 다루는 먼 나라 얘기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패턴 인식 → 문제 정의 → 거버넌스 설계 → 실행”이라는 일관된 공식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그 공식은 코스피 대형주든 소형 성장주든, 혹은 내가 운용하는 ETF 포트폴리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왜 이 기업이 제자리걸음인지, 무엇이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는지 사모펀드식 질문 프레임을 배우면 개인 투자자도 숫자보다 ‘변화의 드라이버’를 먼저 보는 눈을 갖게 된다.
또한 장기 자본이 바라보는 리스크·보상 구조를 이해하면 ‘적자 속 투자’와 ‘성장 속 차익 실현’의 타이밍이 어디에서 갈리는지 감이 잡힌다. 배달의민족·쿠팡·셀트리온처럼 한때 적자였던 기업이 어떻게 계속 자금을 끌어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홈플러스 사례처럼 레버리지가 기업 가치를 어떻게 잠식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 투자자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는 ‘자본이 움직이는 방식이 곧 기업 가치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되고, 자신의 투자 의사결정에도 ‘장기 시야 + 거버넌스 체크리스트’라는 두 가지 무기를 추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