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얽매임으로부터의 자유와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 떠나는 멀고 먼 산책
『독학자』 안에서 이즈음의 배수아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해 보인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지우며 자신만의 글쓰기를 선보였던 작가는, ‘대학교’로 상징되는 제도와 권위, 부조리, 이상적 진리와 영혼의 자유를 향한 주인공의 내적 투쟁을 거침없이 드러내 보인다. 198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를 향한 배수아의 독자적 목소리와 비판적인 시각이 매우 신랄하게 드러나 있으나 정작 작가는 “내가 애정을 기울여서 쓰고자 했던 것은 섬세한 영혼을 가진 한 고독한 젊은이의 내면세계였을 뿐, 마치 펜을 칼처럼 휘두르면서 남을 야단치는 식의 글쓰기는 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 하여, 『독학자』는 영혼의 자유를 위한 한 인간의 고독한 정신적인 투쟁을 찬미하는 매혹적인 소설일뿐더러, 이십여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려는 오늘의 모든 청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흔 살까지는 생계를 위해 필요한 돈을 버는 이외의 시간은 오직 혼자서 책을 읽으며 공부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눈팔지 않고 공부할 것이다. 나는 오직 공부에만 미칠 것이다. 마흔 살까지의 내 삶은 언제나 내가 꿈꾸던 교통수단이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으리라. 구술언어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으리라. 스무 살, 이제 그곳으로 나는 배를 타고 떠난다. 저녁의 광장에 희미한 불이 켜지는 시간이면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책을 펼칠 것이다. _175p
『독학자』가 출간된 2004년으로부터 우리는 꼬박 이십 년을 더 건너와 있다. 작품 속 화자가 건넜을 그 시간의 끝에 작가 배수아가 와 있는 것처럼 읽힌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작가는 수년 전부터 베를린 인근 한 시골 마을의 정원 딸린 오두막에서 읽고 쓰며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 시작부터 낯설고 새롭고 독창적이었던 그의 세계는 여전히, 더욱더 단단한 성을 쌓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겠지만 초조해하지도 않으리라. 분명히 고독하고 틀림없이 두렵기도 하겠지만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러다 이윽고 마흔 살이 되면, 그때 나는 스스로 만든 대학을 졸업할 것이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분명한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겠다. _176p
무려 이십 년 전의 작품을 다시 읽으며, 작가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동시대 독자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까. 어떤 시간이 흐른 후, 그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분명한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