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는 하나뿐이다.”
1998년 ‘철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이 낯설고 새로운 철수에게 충분히 매혹당했다. 1988년의 ‘나’를 이야기하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온한 당시의 젊은 화자는 배수아의 독특한 문체로 인해 더욱 새로운 인물이 되었다.
“배수아의 소설에는 상투적인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배수아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은 오직 배수아의 소설에만 나온다. 그래서 배수아는 하나뿐이다”(『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마음산책, 2018)라고 했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은 책이 출간된 지 삼십 년이 가까운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더욱더 새롭다.
1998년의 ‘철수’, 그리고 2025년의 ‘철수’와 ‘나’
이것이 1988년에 일어난 일의 전부다. 1988년은 나에게 시작이며 끝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더 행복하지 않았던 한 해였다. 그것은 1978년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으며 1998년과 비교해볼 때 더 인상적이지도 덜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1988년에 일어났던 일들은 1978년에도 일어났으며 1998년에도 일어났을 것이다. 1988년에 만났던 사람들은 1978년에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었고 1998년 밤의 주유소 거리에서 무감동한 눈길로 마주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이었고 낯선 중산층이었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변소였고 타인이었고 벼랑이고 까마귀이고 감옥이었다. 그들은 영원히 그들에 지나지 않았다. 제3의 불특정한 인칭들. _97~98p
1988년, 엄마와 오빠,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화자 ‘나’는 냉정하고 무감동하게 가난과 부적응의 상태를 견뎌나가는 청년이다. ‘나’의 남자친구 철수 역시 단조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군대에 간 이후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 ‘나’의 앞에 나타난다. 떠밀리다시피 군대에 있는 철수를 면회 가는 길은 마치 블랙홀처럼 불확실한 시간과 공간으로 변하고, 그에 반해 여전한 (타인들의) 일상과 변해버린 철수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다시 읽는 『철수』는 스토리뿐 아니라, 이를 이야기하는 방식과 스타일, 한 문장 한 문장 그 자체로 흔들리는 젊음의 이야기로 읽힌다. 1980년대와 1990년대라는 특정한 시공간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고 다시 2025년에 이른 지금까지, 그 모든 시절 우리는 또 다른 ‘철수’였고 ‘나’였으며, 2025년 오늘 이 도시의 한 켠에는 역시 수많은 ‘철수’와 ‘나’들이 저마다 흔들리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심지어 1980년대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시대/세대가 맞닥뜨린 역사의 큰 소용돌이 아래 깊은 수면 속에서는 큰 물살에 휩쓸리면서도 또한 한없이 고요하게 혼자 제 물길을 찾아가는 개인/젊음들이 물살을,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내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