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권위자가 한 권으로 쉽게 풀어낸 ‘그림자’ 입문서
수십 년간 후배 분석가들을 교육하고 심리치료사로서 일반인들을 상담하며 강연과 저술을 통해 융 심리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베레나 카스트 교수의 ‘그림자’ 입문서다.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 내면의 어두운 측면, 억눌린 또 다른 자아, 받아들일 수 없고 용납할 수 없고 드러내기 싫은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융 심리학의 그림자 개념을 들어봤을 것이다. 융 심리학에 빠져들고 싶지만 관련 이론서들이 무겁고 어려워서 평소 접근하기 힘들었다면 이 책이 유용할 것이다. 저자는 융 심리학에 기초해 자신의 해석을 보태어 일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적절한 분량으로 그림자 개념을 정리했다. 그림자를 바라보고 수용하는 과정이 어떻게 변화와 발전으로 이끄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으며, 개인의 그림자를 넘어 집단과 세상의 그림자까지 아우르면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나 주변 사람과의 관계적 측면에 조언이 될 만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았다.
우리 안의 그림자와 ‘관계’에 대하여
우리 안의 그림자는 어딘가에 쉽게 투사된다. 가까운 사람일 수 있고, 낯선 사람일 수 있다. 중세 시대에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을 마녀나 악마에게 ‘악’으로 투사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문제는 타인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하며 이는 아주 중요한 주제라고 강조한다.
한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부부나 형제자매, 동료 등 공동생활을 함께하는 사이에서 그림자를 다루는 관점 역시 설명한다. 그림자를 다루는 것은 항상 심리 내적인 문제이자 관계의 문제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종종 우리 안의 그림자는 대인 관계에 몹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책은 관계 속 그림자의 매우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그림자 투사, 투사적 동일시, 그림자 위임 등을 이야기한다. 또 사랑의 관계에서 두 사람의 억압된 그림자가 ‘공동의’ 그림자로 자리 잡을 수도 있고, 관계에서 추구하는 이상으로 인해 그림자가 생길 수도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일은 왜 힘들까
저자는 신화, 동화, 꿈,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자 수용의 몇 가지 모델을 만들었다. 특히 신화와 동화를 예로 들면서 이야기 속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통해 그림자 수용 과정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자 수용은 변화를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것,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또 그림자를 수용하면 삶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자신과 타인에 대해 더 현실적인 시각을 갖게 되며, 자기도취에 덜 빠지고 더 평범해질 수 있다. 인간은 그림자에 항상 몰두할 수 없다. 그림자가 자리 잡을 때, 방해할 때, 사라질 때, 혹은 돌이킬 수 없는 투사를 해서 끔찍하게 큰 고통을 겪을 때만 그림자에 신경 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림자를 다루지 못하면 타인이 우리를 통제하고 위협하며 권력을 행사할 거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마주하고 인정할 것을 당부한다.
그럼에도 그림자를 수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이유로 저자는 우리를 지배하는 높은 자아이상과 체면을 든다. 또 때때로 작은 그림자 요소들이 모여 큰 덩어리를 이루면서 그 그림자를 수용하기 힘들어진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에 대한 친절하고도 예리한 해결책을 전하고, 지금 겪고 있는 힘든 일과 스트레스를 현명하고 신중하게 극복하는 길을 스스로 모색하도록 이끈다.
그림자에 민감해지기, 그리고 기꺼이 책임지기
융은 세상에서 악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인간의 무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무의식으로 몰아낸 그림자를 잘 다루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저자는 그림자를 다룰 때 세 가지 개념, 즉 그림자, 그림자에 대한 민감성, 그림자 수용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 개념들을 모든 사람이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그림자에 대한 민감성을 키우면 자신을 더욱 이해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관대해지며, 위선이 줄어든다고 역설한다.
그림자를 수용하면 우리는 더 큰 책임을 안게 된다고도 설명한다. 그래서 더 이상 ‘악’이나 악한 자를 비난할 수 없으며, 스스로 어떤 지점에서 파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다루는지 늘 자문할 것을 주문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자신의 어두운 면을 기꺼이 책임진다면 그림자는 우리를 더 인간다운 존재, 더 활력 넘치는 존재로 만드는 힘이 될 거라고 강조한다. 결국 우리가 우리 개인의 그림자뿐만 아니라, 집단적 그림자, 더 나아가 우리 세상과 미래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