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탄소’ ‘지구 온난화", ‘온실가스" 운운하는데 막상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서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여름이면 역대 최장기간ㆍ최고 기온이 매년 갱신되는 걸 보면서 ‘에어컨 조금 덜 켜자’, ‘텀블러랑 장바구니 잘 챙기자" 정도의 다짐을 하며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 이상 기온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폭염과 혹한, 해수면 상승으로 줄어드는 빙하, 태풍과 해일, 쓰나미는 TV 너머 세계 뉴스로만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는 깨끗하고 안전하고 어려움이 없으니까요.
자연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먹고 쓰고 입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자연에서 오고 또 자연으로 돌아가죠. 상호 간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요. 만물의 법칙이라고 하기에도 사소한, 간단하고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클릭 몇 번, 터치 몇 번으로 캐비어부터 아이스크림까지 문 앞으로 배송, 배달받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산업은 마법이 아니기에 음식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이 수반됩니다. 그 과정에서 탄소는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식탁의 지도는 작을수록 좋다’는 주제로 시작한 이 그림책은 작업을 거듭할수록 식품 산업 전반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발생하는 탄소 문제를 모두 지적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밀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기까지는 8,950톤의 탄소를 배출하며 913km의 거리를 지나옵니다. 미국의 밀은 108,152톤의 탄소를 배출하며 9,866km의 거리를 넘어왔죠. 호주에서는 8,574km를 지나 13,779톤의 탄소를 배출하며 178,942톤의 소고기가 우리나라로 이동하고요. 이렇게 딱딱하고 어려운 진실은 조은수 글작가와 김진화 그림 작가의 창의적인 표현과 공감어린 캐릭터가 주고받는 시니컬하지만 매력적인 이야기가 되어 그림책에 녹아 들었습니다.
축산업의 물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이 얼마인지, 해마다 상승하는 해수면은 몇 mm인지, 매년 지구의 기온은 몇℃ 올라가는지……. 사실 숫자는 잘 기억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루 세 번 먹는 음식, 그걸 먹기 위해 농·축·수산물을 생산할 때, 그 생산물을 수송할 때, 그것을 가공하거나 조리할 때, 심지어 남은 것을 버리고 처리할 때까지 탄소가 빠짐없이 발생한다는 것, 거리가 멀고 과정이 복잡할수록 탄소 배출량은 늘어난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기억한다면,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합니다.
책을 덮은 후, 우리 어른과 어린이들의 모습인 ‘고기만’과 생존을 위해 회초리질을 참지 않는 성깔 있는 아프리카 펭귄 ‘펭카"도 함께 기억해 준다면, 습관처럼 찾던 발자국 긴 음식 대신 가까이에서 온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시도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숨만 쉬어도 이산화 탄소를 배출하는 우리들이지만, 한숨만 쉬기에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지만 엄청난 일도 많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