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루아침에 학폭 가해자라니!”
실망과 오해만 남은 그 순간,
기묘한 일기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6권 『오늘도 열리는 일기장』이 출간되었다. 책의 저자 조영미는 14년 차 교사로,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 교우관계, 가정의 불화로 인한 청소년의 고뇌를 작품 속에 생생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건강한 교우관계를 쌓아가는 방법과 불화로 갈라진 가정의 봉합되는 과정을 ‘매일 새롭게 써지는 일기장’이라는 소재로 따뜻하게 풀어나간다.
초등학생 시절, 왕따를 당한 경험 때문에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뒷담화도 서슴지 않는 장연우. 그중에서도 향기에 대해서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만큼 박향기가 너무도 싫다. 특히, 연우가 짝사랑하는 하준에게 향기가 말을 걸 때면 부글부글 속이 끓는다.
평소 자주 먹던 떡볶이집에서 열린 가을맞이 할인 이벤트 도전에 성공한 연우는 떡볶이를 앞에 두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향기에 대한 뒷담화를 입에 올린다. 바로 이날, 향기가 하준에게 영어 문제를 가르쳐주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연우가 잠시 좌우를 살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 오늘 박향기 진짜 짜증 나지 않았냐?”
한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며 떡볶이를 먹고 있던 서은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우를 향해 웃어 보였다.
“내가 오늘 연우짱, 박향기 얘기할 줄 알았다.”
“안 할 수가 있겠냐고. 아, 진짜 짜증나. 왜 갈수록 더 재수 없지?”
“영어 시간에 김하준이랑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지?”
“이 남자, 저 남자 다 찔러 보더니 이젠 김하준한테까지. 어휴.”
_본문 중
언제나 연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며 맞장구를 치는 해리와 바른 생활을 실천하며 나쁜 행동은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소꿉친구 서은. 연우는 두 사람 앞에서 향기의 험담을 하던 도중, 학교에 두고 온 휴대폰을 떠올린다. 서은의 휴대폰을 통해 선생님께 연락하지만 이미 퇴근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번 주말은 휴대폰 없이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쓸쓸히 집으로 돌아온 연우. 아빠와 이혼한 뒤로 집안일에 소홀한 엄마는 최근 승진 준비 때문에 집에 없는 날이 더 많다. 퇴근은 밤늦게, 출근은 꼭두새벽인 엄마의 하루를 연우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엄마와는 점점 더 서먹해지고 있다.
이번 주말도 엄마는 일 때문에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출근했다. 덩그러니 카드와 함께 쓸쓸히 남겨진 연우는 무슨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지 괴로워한다. 따뜻한 밥상은 배달 음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지만, 자꾸만 슬픈 마음이 드는 까닭은 휴대폰이 없기 때문이라고 애써 무시한다.
그러나 주말이 끝나고 등교한 월요일. 향기가 연우에게 다가와 뺨을 후려치는데 향기가 들이민 휴대폰에는 발신자가 연우로 된 온갖 욕설과 뒷담화 녹음 메시지가 한가득이었다. 학폭으로 신고했다는 향기의 분노 섞인 목소리와 함께 학생부에서 연우를 호출한다.
“제가 뭘 했다고요?”
“연우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니?”
“아니, 저는 주말에 휴대폰이 없었어요. 떡볶이집 이벤트 때문에 서둘러 나가느라 폰도…….”
“장연우! 증거가 뻔히 다 있는데 계속 발뺌할래? 이러는 거 너한테 하나도 도움 안 돼.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향기한테 용서를 구해야지.”
연우가 억울함을 토로할수록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선생님이 보여 준 화면에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온갖 욕설과 비난이 가득했다.
_본문 중
여러 번이나 억울함을 호소했음에도 연우는 하루아침에 학폭 가해자가 되었고, 방과 후 교내 봉사와 더불어 향기에게 진심을 담은 사과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된다.
선생님이었던 엄마로부터 ‘절대 학생부에 갈 일을 만들지 말라’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던 연우는 학폭 가해자가 된다고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고, 엄마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 주지 않아 무척이나 괴로워한다.
교내 봉사가 끝나고 엄마는 연우에게 ‘사람이 먼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인성 교육을 들으라고 한다. 인성도 학원에 다녀야 기를 수 있는 건지 의문을 갖지만 엄마의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인성 교육을 받는 곳에서 연우는 묘하게 옛날 느낌이 나는 촌스러운 일기장을 발견하고 내용을 읽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학폭 사건 이후로 오랜만에 웃음을 터뜨린 연우는 일주일에 한 번, 인성 교육을 받으러 오는 복지관에서 다음엔 어떤 일기가 적혀 있을지 궁금해하며 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촌스러운 표지부터 웃겼다. 그 안에 쓰인 일기는 더 웃겼다. 다시 노트를 폈다.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또 쿡쿡 소리를 내며 웃어 버렸다.
[ 새로운 일기장은 당분간 학교 서랍에 보관할 생각이다. 여기서 들키나 저기서 들키나. 나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일주일에 한두 번 쓰는 일기마저 포기해야 한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이것도 누군가 읽고 있을까? 이제 나도 모른다 몰라. 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
_본문 중
“긴 시간 마음에 쌓인 실망과 원망도
애틋함으로 천천히 지워갈 수 있도록.”
애정과 용기로 수놓는 경로 찾기
연우는 일기장의 주인이 학교도 진학하지 못한 채 서울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 모은 돈을 모두 가족에게 보낼 만큼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 편지로 남자 친구와 연락하며 다방 데이트를 했다는 것을 보며 엄청난 레트로 감성에 놀라워한다.
그러면서도 가슴 아픈 방직 공장 노동 이야기와 ‘정수 오빠’와의 절절한 사랑에 몰입한다.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죄책감이 있으면서도, 연우는 일기를 보며 조금씩 자신의 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씩 마주하기 시작한다.
일기장의 주인이 편지로만 연락하던 남자 친구를 용기 내 직접 만난 일기를 본 후에 짝사랑하던 하준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몸이 부서져도 괜찮다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는 주인공의 굳은 심지에 연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엄마’와 ‘이혼했지만 앞으로 연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겠다는 아빠’보다 오래도록 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함께하길 원한다며 조심스레 고백한다.
“연우야, 만약에 엄마가 승진을 안 하면 어떨 것 같아?”
“뭐 어때. 승진하는 게 그렇게 중요해?”
“뭔가 이뤄 낸다는 거?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거?”
“그것도 다 생각하기 나름이지 않아? 왜 승진을 해야만 의미 있다고 생각해? 나는 안 그래. 그냥 하루하루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_본문 중
아무리 힘든 상황임에도 어김없이 감사하다는 문구로 마무리되는 일기장 내용에 따라 연우는 입으로 ‘감사하다’를 소리 내어 읽는다. 비록 연우가 학폭 가해자였지만 하지도 않은 일에 누명을 쓴 ‘그 사건’에 대해서도 복지관에서 만난 친구 ‘너구리 눈’의 조언에 따라 진실을 밝히기로 마음먹는다. 이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연우는 조금 더 따뜻한 미래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재밌다고 느낄까?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끝내 고난을 극복한 주인공에 대한 찬사, 닮고 싶다는 동경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열리는 일기장』은 연우가 ‘일기장’을 읽으면서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장면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독서의 재미와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불어 주저하고 있는 현재를 털고 일어나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한 발짝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연우는 문득, 지금 옆에 너구리 눈이 앉아 있음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포렌식 복원을 맡기고 떡볶이집 CCTV를 확인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옆에 의심 없이 믿어 주고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해리 역시 도와줄 것이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결심이 선 연우가 휴대폰 화면을 켜고 해리에게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해리야. 일단 증거를 찾아야 할 것 같아. 늦었지만 진실을 밝히는 건 그럴 만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도와줄 거지?]
_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