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규와 경성역, 김익상과 조선총독부, 나석주와 동양 척식 주식회사…
독립운동의 주요 현장과 인물들
지금도 서울에 남아 있는 흔적을 찾아서
서울 곳곳에는 근대 유적이 적지 않다. 유명한 탑골공원, 독립문, 명동성당부터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만한 러시아공사관 전망 탑, 통감관저 터, 조선신궁 배전 터까지. 옛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예도 있고, 건물 일부나 그 터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공저자 남상욱과 이현실은 이런 여러 공간을 하나씩 거닐며 당대의 풍경을 소개한 뒤 그곳에서 일어났던 주요한 역사적 사건과 그 주인공을 소개한다.
박진감 넘치게 엮어 낸 이야기 속에서 문화서울역284는 강우규가 만 64세의 나이로 가슴에 폭탄을 품고 도착했던 경성역으로, 터만 남은 남산 조선총독부는 당시 만 26세였던 김익상의 투탄 의거지로, 지금의 KEB하나은행 본점이 있는 자리는 당시 만 34세였던 나석주가 폭탄을 투척했던 동양 척식 주식회사로, 서울시의회는 대한 애국 청년당원들이 친일파 처단을 위해 의거를 일으켰던 경성부민관으로 100년 전 모습을 한 채 다시 다가온다. 저자들은 당대의 풍경을 소개하며 역사적 사실을 차분히 전하면서도,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전하는 부분에 이르면 각 인물의 내면과 의거의 순간을 섬세히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독자는 이런 현장감 넘치는 서술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불꽃과도 같은 삶을 좀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공간이 간직한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두 가이드를 따라 읽다 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근대 유적들이 새롭게 말을 건다. 전차와 자전거, 인력거와 자동차가 교차하고 양장과 두루마기, 기모노와 군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가슴속에 태극기, 총, 무엇보다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었던 이들이 살아갔던 시공간이 바로 이 자리에 펼쳐진다.
의거 직후 안중근, 경성 전차 안내도, 일제의 전쟁 선전물…
이야기와 사진으로 재미있고 생생하게
교과서 밖 역사의 현장을 걷다
저자들은 독립운동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당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열망을 풍부하게 담아내어 일제강점기를 좀 더 다층적으로 보여 준다. 각국 공사관이 들어서며 이국적으로 바뀐 정동 거리, 근대식 교육이 시작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일제의 징용과 수탈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경성역, 한국의 경제를 일제에 종속시키고 일제의 대륙 침략을 용이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조선은행, 경성에 최초로 생긴 양식당 ‘그릴’, 사진관 ‘천연당’, ‘동흥이발관’, 새로 생긴 아파트와 버스 등을 폭넓게 다룬다. 이를 통해 경성의 사회·문화적 변화와 생활상 역시 알 수 있다.
저자들이 직접 취재하고 촬영한 사진 자료를 포함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이미지는 이야기에 구체성을 더하고 이해를 돕는다. 경성 전기 주식회사의 전차 노선도, 경성우편국에서 우편배달에 사용했던 자동차, 고종이 사용했던 네덜란드 에릭손사의 전화기, 카페 ‘바론’, 1대 총독 이토와 2대 총독 하세가와의 얼굴이 함께 들어간 일제의 전쟁 선전물이나 경성 곳곳에 세운 일제의 종교 시설인 경성신사 등을 담은 당대의 사진엽서, 군사 시설이었던 조선 주차 헌병대 사령부 터가 바뀐 오늘날의 남산골한옥마을 모습을 찍은 사진 등이 역사를 더 가까이 느끼게 한다.
두 저자의 친절한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역사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책에 소개된 장소들을 직접 찾아 나서고 싶어진다.
역사 공부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 위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아는 만큼 내 공간은 더 넓어지고 풍부해진다. 같은 대한민국을 더 깊게 살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