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서 나는 비로소 겸허해진다.”
한정선 작가는 본인이 조울증과 불안장애, 수면장애와 메니에르 등 다양한 증상을 겪고 있는 질병 당사자이다. 작가는 “질병을 안은 몸을 부정하지 않으며, 자기 몸을 토대로 어떻게 사회를 인식하고 하루를 보내는지 등 다양한 단상을 산문 형태로 기록했다”는 변재원 작가의 말처럼 불안정한 심리와 육체 상태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조울증, 우울, 사회적 소외감 등 개인의 고통과 현실을 사실적이고도 내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독백에 몰입하는 순간, 독자는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공감과 위안을 얻는다. 구체적인 일상에서 섬세하게 탐구된 ‘나’의 고통은 결국 우리가 직면한 정신적 불안과 정체성을 정직하게 응시한다.
“살아내기 위해 잡히지 않는 빛살을 더듬고, 살아가기 위해 시뻘건 상처를 드러내야 했다. 그것들이 글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 다정일 수 있을까. 그걸 읽어 내어준다면 그게 담겨 있다면 조금은 덜 부끄러울까.”
매끈한 일상이 아니라 갈라지고 부서진 마음으로 서걱거리는 일상, 그 갈라진 틈으로 스민 빛을 관찰하며 살아가는 저자는 부서진 몸과 마음을 매일 매일 한 움큼의 절망과 또 한 움큼의 희망으로 덧대며 부서진 존재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성에 차지 않고 어떨 때는 누군가의 온정에 기대어 버텨온 세월 내내, 정말로 나는, 망가지고 엉망인 모습인 그대로 ‘최선’이었다.”
심리적 질환의 극복 서사가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도 삶의 일부이듯 자신을 그대로 보듬는 저자는 어떤 해결책, 치유의 수단을 제시하기에 앞서 “우리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외줄을 타듯 자기와의 지난한 싸움에서도 매 순간 아름다움과 빛을 찾아내는, 간결하지만 세심한 배려가 묻어나는 글은 감정적으로 강한 울림과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질환의 당사자가 쓴 글이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공감과 흥미, 위로를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