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이 남긴 어두운 발자취를 기록하는 까닭
2015년 첫 출간됐던 『한국 재벌 흑역사 (상)』이 『한국 재벌 흑역사 1』로 재출간된다. 첫 출간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삼성과 현대 두 가문의 어두운 역사를 적나라하게 밝혀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됐다가 『한국 재벌 흑역사 3』의 출간을 계기로 10년만에 다시 복간됐다. SK와 롯데를 다룬 『한국 재벌 흑역사 2』 역시 복간돼 독자들 앞에 다시 선을 보인다. 신간으로 출간되는 『한국 재벌 흑역사 3』에서는 신세계와 두산, LG, 대한항공 등 1권과 2권에서 다루지 못했던 다양한 재벌들의 어두운 역사가 기록됐다.
한국 현대사에는 재벌들의 어두운 역사가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다. 재벌들은 자신의 성과를 과대 포장하는 데 혈안이 돼 있고, 그들이 남긴 어두운 역사는 점차 기록에서 사라진다.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 현대조선 폭동 사건과 노조 식칼 테러, 민중의 굶주림을 돈벌이에 이용한 제일제당의 삼분 폭리, 전직 대통령 이명박까지 수혜자로 이름을 올린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투기와 편법 증여의 도구로 전락한 용인자연농원, 안기부 X파일과 삼성의 막대한 비자금, 100만 안티를 양산한 현대차의 오만 경영, 단돈 60억 원으로 9조 원의 자산가로 성장한 이재용의 편법 및 탈법 증여, ‘왕자의 난’의 원조가 된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등 삼성과 현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재벌들의 만행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제 그 이름마저 아련한 ‘옛 사건’으로 잊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이병철과 정주영 등 재벌들은 오징어, 텅스텐을 팔던 가난한 한국을 오늘날 부유한 국가로 만든 ‘신적인 경영자’로 기록돼 있다.
저자 이완배는 기자다. 〈동아일보〉 사회부와 경제부를 거쳐 현재 〈민중의소리〉에서 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저자는 기자가 현대판 ‘사관’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왕의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제대로 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애썼던 사관의 역할이 기자의 임무라는 것. 사관은 왕실의 역사를 기록했던 옛 관료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신문의 지면은 이미 재벌이 컨트롤하는 광고에 종속됐고, 더 이상 누구도 감히 나서 재벌의 어두운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저자는 재벌의 흑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자, 기자의 소명이라고 확신했다.
나아가 저자는 재벌의 흑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기자 개개인의 용기 문제가 아니라 ‘재벌이 가둬 놓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강자의 횡포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사회적으로 합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까지 판단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고심과 노력을 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 책의 강렬한 내용과는 다르게 이 책의 의미를 겸손하게 평가했다. 재벌의 ‘공功과 과過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라는 역사 적기의 기본을 상기하는 작은 역할만이라도 이 책이 해내길 소원했다. 그러면서 ‘100년 뒤 우리 후손들이 1950~2020년대 한국 사회의 핵심 세력이었던 재벌들의 역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기’를 바랐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성찰하고, 제대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의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