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쓴 부조리한 현실과 꿈을 기록한 김도연 작가의 『패엽경』
199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2000년 여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된 후 30년 동안 10여 권의 소설집, 장편소설, 산문집을 펴냈던 김도연 소설가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단상들을 모아 『패엽경(貝葉經)』(부제, 꿈수집가의 허름한 침대)을 출간했다.
김도연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패엽경(貝葉經)은 패다라수라는 활엽수의 잎에 불교의 가르침을 옮겨 적은 불경이라고 한다. 나뭇잎에 옮겨 적은 불경이라…. 두껍고 무거운 불경이 아니라 한 장의 나뭇잎에 적혀 있는 불경을 떠올리자 왠지 근사했다. 내 책의 제목으로 쓰고 싶다는 유혹을 버릴 수 없었는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어찌 나의 잡스런 글에 불경을 올려놓는단 말인가. 하지만 유혹은 강렬해서 2007년에 발간한 첫 산문집 『눈 이야기』 속에 소제목으로 ‘패엽경’을 들여놓았다. 그 내용은 당연히 불경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주워들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휴대폰의 자판을 눌러서 무엇인가를 끄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나만 그러고 있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도연 작가의 고백대로 요즘 사람들은 모두 휴대폰에다가 짧거나 긴 글들을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쓰고 있다.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거나 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 사진과 동영상 등을 올리고 있다. 김도연 작가 역시 그들의 포스팅에서 미소를 짓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그 모습들을 본 후 다시 패엽경을 떠올렸다고 한다. 나뭇잎 크기만 한 휴대폰 화면 위에다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갑자기 성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산문집의 제목은 그런 연유에 의해 정해졌다. 그러니 당연히 불경은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소설가라는 집을 지고 이 세상을 걸어가다가 문득 부조리한 현실, 부조리한 꿈이 떠오를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뭇잎 위에 쓴 짧은 글들을 추려내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산문집 『패엽경』에는 전업작가로서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할 문학적 고민은 무엇인지, 또 자신과 만나 교류를 나눴던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 종교계 사람들은 물론 평범한 일반인들과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산문집 곳곳에는 시인 못지않은 시적인 표현과 독자들이 메모하여 간직하고픈 아포리즘 같은 문구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