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세금의 또 다른 이름, 공짜점심
이 책은 말 그대로의 한 끼 공짜점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써달라고 정부에 맡긴 돈이 부자들에게 고스란히 바쳐지고 있는 여러 잔치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짜점심이란 한쪽이 비용을 부담하고 다른 쪽이 경제적 혜택을 얻는 모든 것을 칭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먹는 격이다. 사실 이 세상에 공짜점심 같은 건 없다. 비용이 발생하면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지불해야만 한다. 복지보조금이라는 공짜점심을 고위직 공직자들이 먹었다면, 그 공짜점심값을 우리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지불한 셈이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어 바로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이 복지보조금 횡령 사례들보다 더 큰 규모의, ‘진짜’ 공짜점심이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다. 이는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부의 불평등현상을 낳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 논하는 공짜점심의 주무대는 비록 미국이긴 하지만 미제는 무엇이든 최고라고 외치며 무조건 차용하려는 우리의 현실에 울리는 경종과도 같다.
실제로 우리 주변 곳곳에서 미국이 걸어간 발자취를 고대로 따라가려는 정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의 민영화, 의료산업 민영화와 부유층 감세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소위 선진화를 이루어낸 미국의 살림살이는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세계 제일의 고성장을 고가하듯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미국의 경제성장과 관련된 총액이나 평균치들은 엄청난 진실 한 가지를 감추고 있다. 그런 대성공에 따른 혜택의 대부분이 경제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사람들에게만 집중적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점이 그것이다. 반면 피라미드의 맨 아래층은 평균소득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상위층에 유리한 정부정책들로 인해 경제적 파탄의 위험마저 가중되고 있다.
이래도 신자유주의인가
정부가 빠지고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김으로써 기업들이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 사업할 수 있게 해주면 전반적으로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이 나아진다는 신자유주의의 발상지 미국은 정말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대로 온 국민의 살림살이가 좀 폈을까?
< 뉴욕타임스> 기자이자 퓰리처상 수상기자인 저자가 내린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부자들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표면적인 살림살이는 나아졌지만 대다수층의 평균소득은 오히려 떨어졌다. 상위 0.1%에 속하는 30만 명의 소득이 하위 절반에 해당되는 1억 5,000만 명의 소득을 합한 액수와 비슷하다. 여기에다 부유층이 당국에 보고할 필요 없는 소득까지 더한다면 그 30만 명은 1억 5,000만 명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린 셈이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열거해보자면, 현재 미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 혹시라도 아플까봐 예방한답시고 비타민이며 영양제가 미친 듯이 팔리고 있다. 출산하려고 병원에 1박2일 입원하면 병원비가 무려 2,000만 원씩이나 나온다. 반복적인 대규모 정전사태와 전압저하 현상으로 신호등이 꺼져 교통사고가 발생하며, 가난한 수천 세대의 미미한 소득의 절반을 전기요금이 앗아가면서 요금미납으로 인한 전기공급중단 사태가 벌어진다. 게다가 전기를 아껴 써도 요금이 내려가지 않는다. 학자금대출이자로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된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휴식과 위안을 주는 공원을 예고도 없이 하룻밤 만에 민간자본에 팔아버리기도 하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아갔어야 할 돈을 가로챈 기업가들이 자선가로 존경받고 있다.
공짜점심의 파생상품, 공공기관의 민영화
지난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발전회사들이 가격이 맞지 않다고 판매사들에 전력공급을 중단한 것이 그 이유였다. 엔론의 주도 하에 미 정부가 전력시장을 효율화한다는 명목으로 발전과 판매 시장을 분리시키는 등 규제를 완화해 경쟁시장으로 내몬 것이 화근이었다. 사실 기존 전력설비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요금이 최대 16%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치도 나온 터였다. 그런데도 주정부 당국의 규제를 받는 공익사업체에서 제공하는 전력에 비해 더 저렴한 전력이 더 효율적으로 공급될 것이라며 굳이 민간으로 넘긴 전력은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전기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심지어 전기 소비량을 줄였을 때도 요금은 배로 올랐다. 직접적인 원인은 엔론이 자사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정부와 짜고 만든 법 때문이었다. 정부가 승인한 담합입찰 시스템이라는 경매에서 전력판매자들은 가격을 점점 더 높여 불러 경쟁시장체제에서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더 많은 수익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번 민간으로 넘어간 전기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불고 있는 의료 민영화의 현실은 어떠할까?
병원주식회사의 실체
미 정부는 의료보장을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하나의 사업으로 본다. 사업의 목적은 이익극대화다. 그 목적은 자본을 취급하는 데는 적절하지만 국민의 건강을 다루는 데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도 의료보장을 더 사업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정부의 주도 하에 강력하게 추진되어왔다. 그것도 막대한 연방보조금으로 지원사격을 가하면서 말이다. 비영리 의료 시스템이 더 우수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고 각종 연구결과들이 보여주고 있어도, 보조금을 영리 의료보장기관들에 아낌없이 주고 있다.
미국만큼 국가 경제에서 의료보장 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도 없다. 2007년 미국 경제에서 6분의 1 정도의 자금이 의료보장을 위해 사용되었다. 미 정부는 2015년경에는 국가 경제의 5분의 1 정도가 쓰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대다수 현대 국가 경제에서 의료보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1인당 비용, 건강상태, 수명 등 객관적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의 의료보장제도는 완전 실패이다. 미국은 2006년에 유아사망률에서 쿠바보다 못한 36위를 기록했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4,700만 명에 달하는데, 보험 비가입자 중 암에 걸린 사람들은 영구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장애인이 되어야만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보장자격을 얻게 된다. 즉 치료가 거의 도움이 되지 않거나 사실상 사망이 불가피할 때 의료보장 혜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게다가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약을 먹을 것인지 굶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학자금대출은 곧 신용불량자
미국에는 매년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젊은이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대학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4년 내지 그 이상 들어갈 학비를 계속 부담할 수 없어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의 3분의 2 정도가 부채를 안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난한 학생들이 공립대에 다니는 데 필요한 등록금 중 60%를 연방정부가 지급하는 펠 장학금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의회가 관련 예산을 계속 삭감하면서 그 비율은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현재 미국의 학자금대출 규모는 연간 약 850억 달러. 샐리매 등과 같은 대출기관이 거의 4분의 1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업체들은 마음대로 이자율을 부과할 수 있다. 미 정부는 학생들에게는 엄격하게 규정을 적용하지만, 대출기관들에는 관용을 과도하게 베푼다. 대출기관에 2억 달러가 훌쩍 넘는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연방법률상의 학자금대출금 상환의무 규정에 의거, 심지어 대출자가 파산했을 때조차도 그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정부 덕에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는 샐리매와 같은 대출기관은 얼마나 돈이 많은지 프로야구팀까지 인수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서민들이 끝없는 부채로 가는 통로, 공짜점심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사회를 규정했던 경제규칙들이 ‘탈규제’라는 단어와 ‘정부개입의 감소가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라는 약속으로 수정되어왔다. 하지만 탈규제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다. 어떤 사회도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현재 미국 경제에 적용되고 있는 새로운 규정 및 규제 들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미국 최고의 부자들과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부유층과 그들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은 규칙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바꾸기 위해 연방정부나 주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민간조직에 규칙을 제정할 권한을 부여해왔다. 규칙을 만든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규칙은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바로 그 부유층과 로비스트들이 선거자금의 주요 기부자들이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당선이 되고 계속해서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법률입안자가 되어 규칙을 만들고 대통령이나 주지사가 되어 그런 규정의 집행을 결정하는 행정관료와 이를 해석하는 판사들을 임명한다.
정부는 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해줄 수도 있다. 골프리조트와 같은 곳에 교묘한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거나, 토지나 광물 같은 공적자산을 무상 지원하거나 실제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도 있다. 반대로 정부는 토지수용권이라는 헌법상의 권한을 동원해 민간 부동산을 소유주로부터 강제 취득해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다. 미 정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위해 그러한 조치를 취한 적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부시 대통령은 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호화스런 잔치를 벌이고 계산서는 우리들 나머지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말 그대로의 ‘공짜점심’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미국의 뒤통수만 보고 쫓아온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에 의한 의료보장 확대’ 정책 채택과 함께 부유층에 대한 증세정책을 발표했다. 더는 이대로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방침이다.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어간 미국이 실패했음을 선언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굳이 그 길을 걸어가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 정부와 부자와 의회가 결탁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미국의 사례를 통해 뚜렷하게 알 수 있는 증거들이 있는데도 부유층 감세정책이 서민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의 경제위기가 촉발된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짚어보고 고통에 허덕이는 국민의 실상을 파헤친다. 즉 국민의 삶을 이렇듯 피폐하게 만들기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어떤 커넥션이 있었는지를 국민이 낸 세금이 흘러들어간 경로를 따라가며 추적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공원으로 국민이 잃은 것은 무엇이고 부자가 된 사람은 누구인지, 치솟는 전기료, 도로통행비, 그리고 의료비를 꼬박꼬박 다 내고도 왜 혜택은 못 받는 것인지, 싼 학자금대출이라며 빌려줄 땐 언제고 왜 이제 와서 엄청난 이자를 들이밀어 허덕대는 빚쟁이로 전락시킨 것인지, 그 이유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세금과 기업, 정부의 메커니즘으로 풀어 낸다. 이 책은 미국의 정책을 좇고 있는 한국의 정치입안자들과 기업인들이 눈여겨보고 정책수정에 반영해야 할 ‘실사 보고서’이자 내 돈 내고 제 권리 못 찾고 있는 순진한 국민들을 위한 ‘예방백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