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국산 라디오(금성 A-501, 등록문화재 제559-2호)를 처음 만들어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엔지니어 故김해수의 일대기
‘산업역군’ 아버지의 기록을 ‘민주투사’ 딸 김진주가 엮어냈다
지지직거리는 ‘아버지의 라듸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일제와 해방,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의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우리의 뿌리 깊은 기억과 새로운 희망을 일깨운다
반세기 만에 다시 주목 받는 엔지니어 김해수의 라디오와 삶
1959년, 최초의 국산 라디오(금성 A-501, 등록문화재 ...
더보기 1959년, 국산 라디오(금성 A-501, 등록문화재 제559-2호)를 처음 만들어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엔지니어 故김해수의 일대기
‘산업역군’ 아버지의 기록을 ‘민주투사’ 딸 김진주가 엮어냈다
지지직거리는 ‘아버지의 라듸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일제와 해방,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의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우리의 뿌리 깊은 기억과 새로운 희망을 일깨운다
반세기 만에 다시 주목 받는 엔지니어 김해수의 라디오와 삶
1959년, 최초의 국산 라디오(금성 A-501, 등록문화재 제559-2호)를 만들어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엔지니어 김해수(金海洙, 1923-2005). 김해수에게 라디오는 운명과도 같았다. 그는 14살에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여 이불 속에 숨어서 라디오 기술을 배웠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관리들도 탐내던 탁월한 엔지니어였고, 해방 직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에 불을 밝히며 ‘전기 의사’라 불리던 고향마을 스타였다.
금성사(현 LG전자) 1회 공채시험에 수석합격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라디오, TV 등을 설계하고 만든 김해수는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부품 국산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은 작은 나라에서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기술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의 초석을 닦기 위한 토종 엔지니어의 자존심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그의 공로로‘금성 A-501’ 라디오는 지난 해 미래창조과학부에 의해 ‘대한민국 광복 70년 과학기술 70선’에 선정되어 새롭게 주목 받았다. (KBS 광복 70년 특집 다큐멘터리 ‘70인의 인생, 역사를 만들다’에서 소개) ‘금성 A-501’ 라디오는 생산된 지 50년이 지난 2013년 8월에 전자 산업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산업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나는 엔지니어 김해수의 개척정신은 앞이 보이지 않는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긍지와 새로운 도전의식을 불어넣는다.
‘산업역군’ 아버지와 ‘민주투사’ 딸이 함께 빚어낸 대립과 화해의 기록
이 책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산업화 1세대’인 아버지 김해수의 기록을 ‘민주화 주역’이었던 딸 김진주(前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중앙위원)가 엮어냈다는 점이다. 아버지 김해수가 ‘산업역군’으로 대통령 표창장을 받으며 경제발전에 신명을 바치는 동안, 그의 아들 딸들은‘민주투사’가 되어 거리로 달려나갔다.
딸 김진주는 1978년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후, 약사라는 안정된 기반을 버리고 가출을 감행, 구로공단 미싱사가 되어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던 박노해 시인(당시 노동자 박기평)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1991년 수배 중이던 딸과 사위가 안기부에 의해 체포되자, 아버지 김해수는 거실에 자랑스럽게 걸어두었던 대통령 표창장을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게 된다.
아버지 김해수는 말한다. “조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산업현장에서 심혈을 바쳤던 우리 세대는 위대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당했던 고통을 강요하거나 외면해온 죄를 짓기도 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임무를 떠넘기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욱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한편, 딸 김진주는 엮은이의 글을 통해 말한다. “20세기 초에 첨단의 전자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로서 그가 살아낸 한국의 현대사는 ‘희망의 시대’이자 ‘배반의 시대’였다. 아버지가 겪어온 날들의 희망과 배반을 잊지 않고 되새겨보는 일은 지금 이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 삶의 의미와 과제들을 좀더 뚜렷하게 밝혀주리라고 믿는다.” 아버지와 딸이 빚어낸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대립과 화해의 순간이 이 책의 곳곳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2016년 봄, 반세기 만에 부활해 소리를 낸 ‘아버지의 라디오’
아버지의 육필 원고를 정리하던 김진주는 실제 ‘아버지의 라디오’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라디오의 진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수소문해보니 남아 있는 것은 전국을 통틀어 대여섯 대뿐이고,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반열에 들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나마 사려고 해도 팔겠다는 이가 없어 라디오를 만든 사람의 유족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무려 반세기 만에 라디오가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의 유물로만 존재했던 그 라디오를 김흥일 선생 (前태백기계공고 교장)이 수리를 해서 되살려놓았다. 김흥일 선생은 4월 28일 방송예정인 KBS ‘과학의 달’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의뢰를 받아 꼬박 일주일 동안 수리에 매달려 라디오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지난 4월 2일 ‘반세기 만에 부활한 라디오 시연 현장’에서 김진주를 만난 김흥일 선생은 이렇게 소회를 전했다. “회로 하나하나를 다시 체크해 보았는데 예전의 성능을 거의 유지하고 있어 참으로 놀라웠죠. 당시 라디오를 개발한 엔지니어들의 선견지명과 튼튼하고 오래가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고심했던 흔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김진주가 낡은 스위치를 켜자 기적처럼 전원등에 불빛이 들어왔다.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다이얼을 돌리다 보니 진공관을 타고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음성, 흥겨운 노랫소리까지! 김진주는 아버지가 손수 만든 ‘금성 A-501’ 라디오가 세상을 향해 첫 발신을 하던 순간의 전율을 느끼며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과학의 달’ 특집 KBS 다큐 <아버지의 라디오> 2016년 4월 28일 방영 예정
4월은 ‘과학의 달’이다.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획을 남겼지만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이름, 김해수의 일대기를 공영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해방 후 70년간 과학기술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온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기술과, 그 숨은 공로자들을 집중 조명하는 이번 KBS특집 다큐멘터리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일군 주요인물로서 집중 조명을 받은 사람은 단 두 명, 세계적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와 <아버지의 라디오>의 주인공 엔지니어 김해수이다.
당시에는 조명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엄청난 산업적, 문화적 파장을 일으켜 온 공로와 실체를 추적하고, 그 의미를 시청자들과 독자들이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스마트 기술로 재편되는 대전환의 시대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혁신적 발상은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아버지의 라디오>편은 총 4부작 중, 3부로 4월 28일 밤 10시에 KBS1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이번 방송을 통해 1959년 이 땅에 탄생한 라디오 한 대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IT기술과 전자산업의 효시가 되었고, 우리 전자제품들이 ‘Made in Korea’로 세계를 누비게 되었는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