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실정에 맞고 한국어로 써진 인류학 현장연구방법론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 땅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인류학자라면, 인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의 가장 큰 특징이자 거의 모든 인류학자들의 자부심의 원천인 현장연구방법론을 영어로 쓴 책에 의지하여 가르치고 배우자니, 공부하기도 힘들고 수업 효과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인류학자 다섯 명이 모여 4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민족지 연구의 개념부터 현장연구fieldwork를 설계하고, 현...
더보기
우리 실정에 맞고 한국어로 써진 인류학 현장연구방법론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 땅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인류학자라면, 인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의 가장 큰 특징이자 거의 모든 인류학자들의 자부심의 원천인 현장연구방법론을 영어로 쓴 책에 의지하여 가르치고 배우자니, 공부하기도 힘들고 수업 효과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인류학자 다섯 명이 모여 4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민족지 연구의 개념부터 현장연구fieldwork를 설계하고, 현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참여관찰과 면담을 진행하고, 기록과 자료를 관리하여 마침내 글쓰기를 마치기까지, 인류학 민족지 연구를 시작해 마무리하는 과정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또 다양한 사례를 곳곳에 배치하여 실제 현장연구를 할 때 구체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하였다.
<책속으로 추가>
하지만 민족지적 현장연구에서 정보제공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대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현지어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구자와 정보제공자가 같은 모국어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각각이 속한 사회 집단의 하위문화가 다른 경우에는 의사소통에 각종 장애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보제공자가 각종 은어나 인터넷 신조어를 사용하거나 비속어 또는 욕설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등 특정한 언어 습관을 가진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경우, 현장연구자는 정보제공자가 연구자를 의식하여 자신의 일상 언어를 보다 ‘품위 있는’ 언어로 바꾸어 말하느라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정보제공자가 사용하는 낯선 어휘, 표현방식, 분류법 등을 처음 접했을 때 현장연구자는 다각도에서 부연설명을 요청하지만, 일단 이해하고 나면 그것들을 직접 사용하여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이유는 바로 정보제공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대화하기 위해서이다. 정보제공자가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쟁점과 관련하여 연구자와 상충하는 입장을 드러내고, 그중 어떤 부분은 연구자가 보기에 명백한 오류 내지 왜곡이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에도 민족지적 현장연구자는 정보제공자의 입장에 정면으로 반박하거나 도전하기보다는 부연설명을 요구하는 질문들을 통해 정보제공자로 하여금 자신이 취하는 입장의 배경 맥락을 스스로의 언어로 진술하도록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148~149쪽
연구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계획서의 연구주제나 연구목적, 연구내용 등이 지침이 되기는 하지만 순간적으로 우선순위를 판단하기도 어렵고, 기록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로 인해 초보 연구자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현장연구자가 경험하는 일이므로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다. 연구의 목적과 내용에 비추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눈에 들어오거나 귀에 들리는 수많은 것 중 어떤 것이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인지를 즉석에서 판단하여 기록하고, 돌아간 후에 그 기록 내용을 반복하며 읽으면서 중요한 주제나 반복되는 패턴 등을 찾다 보면 연구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기록에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또한 보고 듣는 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자신의 행동 중 의미 있는 것도 기록해야 한다. 현장에서 갑자기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특별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들의 기록도 중요하다. 자신의 판단이 변하는 것에 대해서 겁낼 필요는 없다. 현장연구에서는 연구의 목적 자체가 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185쪽
글쓰기 작업을 하는 구체적인 스타일은 현장연구자에 따라, 다루는 현장의 성격이나 연구의 주제에 따라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 작업의 세 가지 스타일을 소개한다. 현장연구자는 이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하지 말고 자신에게, 또 하고자 하는 작업에 가장 알맞은 스타일을 개발하도록 한다.
첫째, 현장연구자가 자신이 관찰하고 들은 것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추적하면서 그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검토하는 방법이다.
둘째, 현장 조사 기간 중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나 인상에 남은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이나 쟁점을 출발점으로 하여 관련된 주요 사건들이나 행위를 주제별로 추적하는 방법이다.
셋째, 특정 주제와 관련된 사건이나 행동들에 체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관련된 주요 사건들을 회상하는 방법이다.
이상의 세 가지 방법은 상호배제적이지 않으며 연구자는 상황에 따라 이들을 결합하거나 선택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발전시키게 된다. 한편 글쓰기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현장노트를 비롯한 여러 자료들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2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