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언론이 특파원을 파견해 최초로 전쟁을 체계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쟁 보도 방식의 변천과 전쟁특파원들의 활동을 역사적?사회학적, 그리고 언론학적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특히 시대별, 주제별로 대표적인 사례들을 통해 서방 언론사와 한국 언론사 전쟁특파원들이 국제분쟁과 전쟁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보도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역사의 목격자,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국가나 정치 집단 사이의 전쟁이나 분쟁은 언론의 흥미를 끄는 중요한 뉴스 주제 가운데 하나다. 폭력과 파괴,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상황 전개, 전쟁 영웅의 출현과 휴먼 드라마, 대규모 인명과 재산 피해 등 전쟁이 가져오는 충격은 언론 수용자인 독자와 시청자, 청취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개전에서 종전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목격자이자 기록자’로서 객관적 진실을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전쟁특파원들은 전쟁에서 중립적 위치를 지킬 것을 요구받고 있다. 또 전쟁특파원들은 치열한 전쟁이 끝난 뒤에 승전국들은 어떤 이득을 누리고 패전국들은 어떤 고통과 상처를 받게 되는가를 살피고, 전쟁 참전국들은 물론 인류 전체에 전쟁이 남긴 상처와 유산이 어떤 것들인지를 정확히 기록해 역사의 증언으로 남겨야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의 국제분쟁과 전쟁들을 되돌아보면 전쟁특파원들이 중립자적 역할보다는 정부나 군부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는 동조자로서의 역할을 해온 감이 없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는 식의 평화 옹호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국가의 외교 정책이 실패해 다른 국가들과의 이해관계가 악화되고 갈등이 고조되면 최후의 해결 수단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전쟁특파원들이 나서서 활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종래의 전쟁 보도에서 강조되어 온 위기, 폭력, 파괴라는 뉴스 판단 기준에서 벗어나 국익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면서도 진실을 담은 전쟁 보도가 어떻게 하면 이루어질 수 있을지를 전쟁특파원의 역할을 중심으로 모색해 보고자 한다.
국제분쟁 보도 방식과 전쟁특파원의 역할에 대한 연구 분석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벌이는 와중에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인 대한민국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비전투부대를 이들 지역에 파병했다. 따라서 미국 주도의 전쟁과 분쟁이라 하더라도 어느새 우리 자신의 당면 과제가 되어 버렸다. 이외에도 한국군은 세계 여러 곳의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 다국적군 등의 명칭으로 참여해 왔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전쟁과 국가 안보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전쟁과 분쟁, 그리고 이에 대한 언론 보도와 그 영향력 등에 관한 연구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전쟁 보도와 관련된 여러 학술서적의 경우, 대체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전쟁 등 특정 국제분쟁이나 전쟁 보도 사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160년이 넘는 기나긴 역사를 지닌 전쟁 보도 전반에 대해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언론인들이 펴낸 전쟁 보도 관련 서적들은 베트남 전쟁, 동티모르 내전, 중동 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자신들이 취재했던 전쟁들에 대한 단편적인 에피소드 소개나 특정 지역 분쟁에 대한 소고 형식이 대부분이어서 전반적인 국제분쟁과 전쟁 취재 보도 관행에 대한 분석 연구서나 지침서가 되기에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 책에서는 언론의 전쟁 보도에 관한 실증적인 학술 연구 자료와 세계 각국 전쟁특파원들과의 인터뷰 내용 등을 통해 국제뉴스와 분쟁 보도의 실상을 소개하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이라크, 이집트 등 각국 전쟁특파원들의 증언을 통해 각국 언론의 전쟁 보도 사례들을 상호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20세기 이후의 대표적인 전쟁 보도 관련 신문 기사와 방송 원고, 관련 사진들을 함께 실어 독자들의 흥미와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분쟁지역 취재와 전쟁 보도에 대한 실무적?이론적 역사와 배경을 이해하고, 상업 언론의 이윤 추구나 정부와 군부의 국익 추구 및 홍보 전략에서 비롯된 왜곡된 분쟁 취재와 전쟁 보도 사례들을 비판적으로 해부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과 학술 자료, 그리고 저널리즘 실무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데에는, KBS 방송 기자로 13년 동안 근무하면서 2002년 이후 이라크,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등 분쟁지역을 직접 취재 보도했던 저자의 경험이 원동력이 되었다. 또 2005년부터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서 언론학 교수로서 학부와 대학원에서 미국과 세계 각국 학생들에게 ‘전쟁, 분쟁 및 언론(War, Conflict and Media)’, 그리고 ‘전쟁 및 재난 보도론(Reporting War and Disaster)’ 등의 과목을 강의하면서 이를 주제로 한 학술논문들을 발표해 온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의 구성과 내용 먼저 다양한 사례를 통해 국제분쟁과 국제뉴스가 지닌 성격을 알아본다. 국제분쟁과 국제뉴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뉴스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에 왜곡 보도가 이루어지기 쉽다.
이어서 2011년 시작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시민혁명을 통해 국제분쟁 보도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전쟁특파원들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본 다음에, 그렇다면 전쟁특파원이란 누구이며 전쟁특파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대표적인 전쟁특파원들의 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한편 전쟁특파원들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과거 전쟁에서와는 달리 전쟁지역에서 테러리스트와 무장단체, 심지어 서방 참전국 군대들로부터 끊임없이 신변상의 위협을 받아 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제분쟁 보도 과정에서 전쟁특파원들이 부닥치게 되는 신변상 위협에 대해서 별도로 살펴본다.
다음에는 20세기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과 분쟁, 그리고 이를 취재 보도한 서구와 한국 언론의 활동과 함께 국제분쟁 취재와 전쟁특파원들의 활약상들을 정리하고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전 등 20세기 주요 국제분쟁들을 비롯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21세기에 들어선 뒤 벌어진 여러 국제분쟁을 차례로 조명하면서 분쟁 취재와 전쟁 보도의 변화상과 언론과 정부의 관계, 전쟁 특파원의 역할 등을 중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특히, 군과 언론, 즉 전쟁특파원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시대별로 자세히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21세기 들어 전쟁특파원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다룬다. 통신기술의 진보로 전쟁 보도가 개인이 간단히 뛰어들 수 있는 영역으로 바뀌면서 전쟁특파원의 전성시대는 서서히 작별을 고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쟁 보도가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는 오늘날, 전쟁 뉴스를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지닌 전쟁특파원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졌다고 하겠다.
<책속으로 추가> 베트남 전쟁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군부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에서는 미군이 최소한 대한민국을 지켜 내고 공산 침략을 저지했다는 위안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승리는 고사하고 전장에서 철수한 뒤 마지막 순간에는 동맹국 남베트남을 헌신짝 버리듯 포기해야 했다. 미군 고위 장교들은 베트남 전쟁이 자신들에게 가장 치욕스런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을까? 여러 이유 가운데 언론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트남 전쟁은 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이 신문을 제치고 주도적인 매체로 등장해 생생한 전투 영상을 미국인들에게 보여 준 전쟁이었다. 미군 고위층은 미국 전쟁특파원들이 미군과 동맹국 남베트남군의 작전 실패와 비효율성을 과장 보도했다고 비난했다. 군 고위 장교들은 특히 텔레비전 뉴스가 거의 날마다 미국인들에게 베트남 전쟁의 부정적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미군 사상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줘 반전 여론을 확산시켰다고 주장했다. ~ 거의 날마다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지켜본 베트남 전쟁 보도가 결국 미국인의 전쟁 피로감을 가중시켜 미국 군부와 전쟁에 대한 지지 의사를 거두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나 군부가 전쟁특파원들의 취재 보도 활동에 아무런 통제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반성인 셈이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미 군부가 얻게 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어떤 전쟁이든 언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으로부터의 지지도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미국 군부는 이에 따라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전쟁에서는 전쟁특파원들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통제할 것을 구상하게 되었다. - 167~168쪽에서 -
한편 미국 언론과 전쟁특파원들에게 걸프 전쟁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고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통제되고 기사 검열이 이루어진 전쟁이었다. 노트북 컴퓨터, 위성전화, 이동 위성 송출장비 등 새로운 취재 보도 장비를 갖춘 언론은 전투지역 내에서 뉴스와 정보를 마음껏 보도하려 했지만 미국 정부와 군부는 작전 보안과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극히 제한된 뉴스만을 보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특히 미국 군부는 미디어 풀 취재를 공식 창구로 삼아 제한된 수의 전쟁특파원을 공보장교가 인솔해 미리 엄선한 지역들만 방문 취재하도록 허용했다. 이런 점에서 걸프 전쟁은 미국 언론에게 가장 불쾌하고 불만족스러웠던 전쟁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취재 보도의 자유를 구속당한 언론은 꾸준히 불만을 토로했지만 군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따라서 언론과 군부의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고 말았다. 전쟁특파원들에게 가해진 각종 취재 제한과 기사 검열로 인해 미국인과 세계 각국의 독자와 시청자들은 걸프 전쟁에 대해 지극히 단편적이고 왜곡된 사실만을 접할 수 있었다. - 183~184쪽에서 -
아프리카 대륙은 서구 언론이 간혹 뉴스로 다루기는 하지만 평상시에는 거의 잊혀 있는 곳이다. 전쟁특파원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아프리카는 열악한 생활환경과 거친 자연환경 탓으로 장기간에 걸쳐 취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뉴스들은 해외 토픽 에피소드 정도로 피상적이거나 단편적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프리카의 분쟁이나 전쟁을 다룬 뉴스 기사라 하더라도 선한 자와 악한 자의 구분이 모호한 것은 보통이고 심지어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인가를 잘못 규정하더라도 어느 누구로부터 비난받을 가능성이 없다. ~ 아프리카 대륙을 취재하는 서방 언론인들은 일단 극적이고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 줄 수 있는 뉴스 주제를 찾아다닌다. 아프리카에서의 전쟁과 분쟁이라는 주제가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으로 먹혀드는 것도 바로 이유 때문이다.
- 187~188쪽에서 -
한마디로 말해서 평화 저널리즘은 전쟁특파원들이 단순 사실을 보도하기보다는 분쟁과 관련된 해설과 분석 기사를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평화 정착 노력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종족이나 종교 간 갈등과 차이점을 강조하지 않으며, 상호 간 갈등과 분쟁을 부추기는 내용을 담지 말아야 하고, 분쟁 당사자들의 사회구조를 살펴보고 분쟁 종식과 파괴된 지역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분쟁 당사자들 간의 화해를 주선하고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229쪽에서 -
종군 취재는 베트남 전쟁 이후 계속된 미국 군부의 언론에 대한 경계와 적개심을 거두게 했으며 미국 언론 또한 군부에 대한 조소와 비아냥대는 것 또한 털어 내게 했는데, 이로써 군과 언론이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회복하게 되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정부와 군부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거센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미국 언론이 처음으로 군부에 대해 긍정적인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군 당국으로서는 크게 고무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전쟁특파원들이 이라크 침공 작전과 미?영 연합군의 전투를 긍정적이고 영웅적인 투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종군 취재는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 군부가 거둔 가장 뛰어난 홍보전 성공 사례로 꼽히게 되었다. - 258~259쪽에서 -
이라크 전쟁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신문, 방송사 소속 전쟁특파원들 외에도 새로운 부류의 전쟁특파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인터넷 언론사나 프리랜서 신분의 방송 카메라맨들로 노트북 컴퓨터와 자그마한 캠코더, DV 테이프 등을 배낭 속에 집어넣고 전장을 누비며 취재 활동을 벌였다. 이들 가운데 일부 기자들은 비종군기자로 활약하며 이라크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대부분 종군기자 신분으로 미군 부대에 배속되어 전쟁을 취재했다. 이들은 긴박한 전투 상황을 취재하면서 혼자 기사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촬영, 편집한 뒤 송출하거나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리는 그야말로 일인 다역을 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해내는 멀티 태스킹(multi-tasking)이 가능한 새로운 전쟁특파원들을 배낭 저널리스트(Backpack Journalist)라고 부른다. - 283쪽에서 -
이라크 침공 작전은 역사상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가장 많이 집중되었던 단기간의 전쟁이다. 전쟁특파원들은 21세기 통신기술 혁명을 만끽하면서 위성전화, 위성 송출장비 등을 휴대하고 실시간으로 전쟁 보도를 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전쟁 보도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전쟁특파원들은 미국과 영국 등 참전국 정부와 군부의 숨겨진 의도와 야심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들의 홍보 전략에 말려들어 그들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 286쪽에서 -
오늘날 21세기의 국제분쟁과 전쟁은 어느 특정 참전국의 승리나 전투 종료 선언을 바탕으로 전쟁이 끝난다기보다는 전쟁 당사국의 정치, 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른 국민 여론의 악화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서둘러 끝내거나 ‘쌍방이 적당히 비기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다. 달리 말하자면 정규군 대 정규군의 대결이었던 제1, 2 차 세계대전과 걸프 전쟁과는 달리 게릴라 저항세력, 민병대, 테러 단체 요원 등 비정규 게릴라들과 정규군의 길고도 처절한 전쟁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는 개전에서 종전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목격자와 기록자’라는 전쟁특파원의 역할이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303쪽에서 -
군과 전쟁특파원들 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민간인인 전쟁특파원이 전투 지역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지, 또 그들이 취재한 내용을 어느 선까지 보도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지 등 군과 전쟁특파원들 간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달리 말해 전쟁이나 분쟁을 치르는 군은 국익 수호와 군사 기밀 보호를 이유로 대부분의 정보를 통제하려 들지만,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이를 거부하고 독자와 시청자, 청취자들에게 전쟁이나 분쟁에 대한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두루 취재한 「시카고 데일리 뉴스」의 전쟁특파원 키이스 비치는 전쟁에서 군과 전쟁특파원들 간의 관계를 ‘상호 불신(mutual distrust)’이라는 단어로 간략히 표현했다. 군은 전쟁특파원들을 좀처럼 신뢰하지 않고 가능하면 통제하려고 하며, 전쟁특파원들 역시 군이나 군사 작전의 약점이나 실수를 찾아내 폭로하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 304~305쪽에서 -
군과 언론 간의 상호 관계를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면, 제1,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은 언론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가했지만 전쟁특파원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를 수용했으며 자신들의 전쟁 보도가 아군의 승리를 위한 수단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군은 언론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잃게 되었으며 쌍방 간의 관계는 비우호적?적대적 관계로 바뀌었다. 역설적으로 전쟁특파원들의 언론 자유는 가장 크게 확대된 시기였다. 그레나다 침공과 걸프 전쟁을 거치면서 군부와 언론의 관계는 악화되었는데, 이는 군부가 전쟁특파원들의 전장 접근을 차단하거나 취재를 제한하는 등 언론 통제를 가했기 때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때에는 군부가 다시 언론에 대해 유연한 자세로 돌아서 전쟁특파원의 종군 취재를 허용하는 등 융통성을 발휘함으로써 쌍방 간의 관계는 또다시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제1, 2차 세계대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군이 언론에 대한 통제권을 극도로 강화하고 전쟁특파원들의 취재 보도에 더 많은 제약을 가할 경우 전쟁특파원들이 크게 반발해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군과 언론 간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전쟁특파원들이 기사 검열이나 취재 통제 지침에 반발하고 언론 자유 보장을 요구하기보다는 군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전쟁 취재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베트남 전쟁의 경우에서처럼 군의 언론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졌을 경우에는 전쟁특파원들이 오히려 전쟁이나 분쟁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더 많이 보도해 쌍방 간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 328쪽에서 -
전쟁 보도는 통신기술의 진보에 따라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간편히 뛰어들 수 있는 영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 그러나 오늘날 다양화된 멀티미디어 환경 속에서는 과거 분쟁지역에서 몇 년씩 생활하며 분쟁과 전쟁을 전문적으로 보도해 온 전쟁특파원들의 깊이 있는 해설과 분석 기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분쟁이나 전쟁 지역 뉴스는 자살 폭탄 테러나 대규모 사상자 발생 등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국제분쟁이나 전쟁의 일부분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다. 특히 분쟁이나 전쟁 취재 경험이 부족한 아마추어 프리랜서 전쟁특파원들이 보도하는 분쟁이나 전쟁 뉴스는 종종 뉴스의 정확한 출처와 의도를 간파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의 전쟁 보도에서는 이처럼 다양화되고 어찌 보면 난립된 형태의 전쟁 보도물을 보다 균형감 있게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지닌 전쟁특파원들의 존재가 더욱 절실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들 21세기 전쟁특파원들은 과거와는 달리 보다 간편하고 효율적인 통신기술을 활용해 세계 곳곳을 종횡무진 하며 낙하산 저널리스트로서 전쟁 보도를 하게 될 것이다.
가장 최근의 국제분쟁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전통적인 신문과 방송 매체 이외에 뉴미디어인 인터넷의 눈부신 성장으로 어느 누구라도 손쉽게 전쟁 보도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전투지역에서 전황을 신속히 보도하는 전쟁특파원들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이라크와 주변국을 중심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터넷 블로그를 활용하는 이른바 시민 기자들이나 블로거들이 전쟁 보도에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했고, 참전 군인들이 직접 촬영한 비디오 영상이 인터넷에 올려져 확산되기도 했지만, 이들이 전하는 전쟁 소식은 극히 단편적인 에피소드이거나 사실 여부가 불명확하거나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상이한 시각을 지닌 것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목격한 사실을 객관적 시각에서 보도하는 전쟁특파원의 존재는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 344~346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