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처럼 뜨거운 한여름의 무술 수련기
어린이의 세계에도 어른의 세계만큼이나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학업 성적, 친구들과의 관계, 마주하기 싫은 체육 시간처럼 시시때때로 주어지는 능력 밖의 일, 주변의 이유 없는 무시나 비웃음 등등. 이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은 두렵고 어려운 상황들과 맞닥뜨리면 우리의 태도는 보통 둘 중 하나가 된다. 정면으로 부딪쳐 헤쳐 나가거나, 그냥 피해 버리거나. 이 책에서도 친구들의 놀림이나 힘든 일에 직면했을 때, 용기를 내지 못하고 고개 숙이는 나약한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할아버지는 무림 고수》는 귀여워서 웃음이 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초등 4학년생, 도우의 이야기이다. 학교 생활에서 늘 자신감이 부족하고, 친구 관계에서도 치이기 일쑤인 도우가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처음으로 용기를 낸다. 바로 무술을 배워 힘을 기르기로 한 것. 도우는 할아버지와 보내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통해 어떻게 강한 존재로 거듭나게 될까?
나약하던 아이, 강해지기로 결심하다
도우는 정글 같은 학교에서 약하디약한 토끼처럼 살아가는, 소심하고 나약한 아이이다.어느 날, 반 친구들에게 치이고 동네 일진들에게 돈을 뜯긴 도우는 무기력하게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꾼다. 자신이 대단한 내공을 지닌 강한 존재가 되어 자기를 괴롭힌 아이들, 못된 사람들을 혼내 주는 꿈이었다. 도우는 이것이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여름 방학 동안 팔공산 자락에서 무술 수련을 하며 사시는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무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할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무술 수련을 청하는 도우를 말없이 받아 주지만, 도우의 기대와 달리 곧바로 무술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거위 길들이기, 방울토마토 가꾸기, 명상하기 등 영 재미없고 쓸데없어 보이는 일들만 잔뜩 시키는 거다. 거위들은 왜 그리 사나우며, 한여름 방울토마토 밭 가꾸기는 왜 그리 끝없이 이어지는지! 할아버지를 만나면 곧 무술의 달인이라도 될 것만 같았던 도우. 빨리 끝장을 보고 결과를 얻고 싶은 도우에게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답답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몸과 마음의 근력을 키워 준 할아버지의 명 처방전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보니, 거위를 길들이고 방울토마토를 키우는 일은 도우의 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내심을 길러 주는 할아버지의 좋은 처방이었다. 끈기 있게 거위와 친해지고 텃밭에서 수확의 기쁨을 맛보며, 또 자연 속에서 명상을 하며 도우의 마음 안에 있던 급한 성질과 나쁜 감정들이 조금씩 사라진 것이다. 시골집에는 영화나 만화에서 볼 법한 각종 무술 수련 기구들도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도우에게 맨손으로 힘을 기르는 방법을 알려 준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은 진정한 무술이 아니라고 말씀하며, 할아버지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더 큰 힘으로 눌러 이기고자 했던 도우의 그릇된 욕심을 깨우쳐 준다.결국 도우는 할아버지와 여름 방학을 보낸 뒤 작고 단단한 까만 콩처럼 영글어 학교로 돌아간다. 온몸에 근육이 붙고 날래졌을 뿐 아니라 두려움과 마주해도 피하지 않는, 몸과 마음이 모두 단단한 아이가 된 것이다.
투박하지만 다정하게, 믿고 기다려 주는 어른의 존재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과 좌절을 겪는다. 그때마다 회피하거나 주저앉을 것인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너지는 대신 자신을 믿고 다시 일어설 것인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련을 이겨 내고 성장하려면 아이들에게는 숱한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튼튼한 몸을 만들어 줄 운동, 무엇인가를 끈기 있게 해내는 경험,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노력들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다. 또 그것 말고도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어른들의 지지와 기다림이다.
도우에게는 투박하지만 다정하고, 잔소리하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적절히 조언해 주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응원하고 기다려 주는 어른이 한 사람이라도 곁에 존재한다면, 그 아이의 삶은 중심을 잡고 단단해지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무림 고수》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거나 겁내지 않는, 이른바 ‘꺾이지 않는 마음’의 토대가 되어 줄 한 아이의 뜨거웠던 성장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