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원지간은 가라, ‘견계지간’이 나타났다!
‘가족.’ 어떨 때는 한없이 아늑하고, 어떨 때는 진저리가 나는 말이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한집에 사는 검은 개 덕구와 흰 수탉 팔딱이는 날마다 서로 으르렁대기 바쁘다. 대개 팔딱이가 덕구에게 시비를 거는 탓이다. 남이라기에는 너무 많이 알고 가족이라기에는 조금 멋쩍은 사이가 이어지던 가운데, 마른하늘에 치던 천둥처럼 집안에도 청천벽력이 닥친다. 암탉 가운데 한 마리, 강정이가 하룻밤 사이 사라진 것이다. 강정이 그리고 간밤에 닭장을 습격한 범인을 찾아서 덕구와 팔딱이는 함께 집 밖으로 나선다. 강정이의 실종을 계기로 마주하는 사건들이 덕구와 팔딱이 시점을 번갈아 가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윤성은 작가의 따뜻하고 섬세한 글과 이은경 작가의 정겹고 역동감 넘치는 그림이 만나, 여러 동물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가는 우리네 시골 풍경을 담아냈다.
다정함이 품은 단단함
덕구와 팔딱이는 둘 다 수컷이지만 성격과 행동은 정반대다. 팔딱이는 집안 장닭이라는 자존심이 강한 반면 실속은 영 시원찮다. 적과 마주칠 때를 대비해야 한다며 암탉들을 모아서는 난데없이 덕구를 연습 상대 삼아 온갖 훈련을 시킨다. 암탉들이 열심히 위협하는 법을 익히고 마당을 빠르게 달리는 동안 팔딱이는 옆에 우두커니 서서 명령만 할 뿐이다. 명탐정인 양 으스대며 추리한 내용은 하나같이 헛다리를 짚기 일쑤다. 팔딱이의 가부장적인 모습은 호들갑스럽고 우습게 전도되어 ‘남자다움’이라는 허상을 무너뜨린다.
한편 덕구는 험상궂어 보여도 묵묵히 주변을 잘 살핀다. 자기를 길러 준 엄마 간장이와 암탉 동생들은 물론이고 밉상인 팔딱이도 잔정으로 챙긴다. 심지어 가족의 원수나 다름없는 상대를 향해서도 감정을 헤아리고, 복수와 연민을 둘러싼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서 다정하기를 선택할 줄 안다. 덕구는 새끼 고양이를 보살피며 사랑을 깨닫고, 으레 돌봄을 ‘모성’의 영역으로 여기는 통념을 전복한다.
덕구가 차근차근 쌓은 다정함은 끝내 팔딱이에게도 이르러 빛을 발휘한다. 덕구가 새끼 고양이 양념이를 품어 키우고, 양념이가 팔딱이네 병아리 양파를 품어 주는 모습을 보고 팔딱이도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가족을 지키겠다고 담벼락 밖을 향해 큰소리치기보다, 그 안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상대와 교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소중한 이들을 단단히 잇는 힘은 물리력이 아니라 안온한 사랑과 유대에서 비롯한다.
서로 돌보고 부대끼며 맺어지는 ‘진정한’ 가족
윤성은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나아가 서로 다른 비인간 동물끼리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물 흐르듯 묘사했다. 집안의 든든한 기둥인 아주머니는 약한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인물이다. 아주머니는 다른 집에서 시커먼 데다 알도 못 낳는다고 구박받던 간장이를 데려왔다. 그다음에는 어미 개가 교통사고를 당해 혼자 남은 덕구를 보호소에서 입양했다. 그렇게 센 척하는 팔딱이도 알고 보면 다른 수탉과 싸움이 붙어 다친 녀석을 아주머니가 거두어 온 것이다.
그런 아주머니를 보고 배웠는지 간장이는 덕구를 자기 자식처럼 품어 키우고, 또 덕구는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데려와 품는다. 팔딱이와 마요 사이에서 태어난 병아리 양파는 멋들어진 이름을 얻은 새끼 고양이 양념이와 사이좋게 붙어 다닌다. 동종과 이종, 혈연과 비혈연이 한데 어우러진 ‘가족의 탄생’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꼬꼬댁’ ‘멍멍’ ‘야옹’ 하고 다양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질한 민족과 혈연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서 벗어나, 가족의 정의와 형태는 더욱 다양하고 자유로워지고 있다. 한때 팔딱이가 그랬듯 누군가는 이런 변화가 내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아리와 고양이를 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과 충만함을 얻은 팔딱이처럼, 결국 자기 스스로를,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권위와 배척이 아닌 개방성과 공존이다. 《꼬꼬댁멍냥 가족의 탄생》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정하게 은유한 동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