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받은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려면 서로 “큰 만남”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작가가 책 말미에 밝힌 “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마음보다 큰 만남” 말이다. 이런 만남이 우리를 예술가로 거듭나게 하고, 이런 만남이 우리의 예술을 시민력으로 바꿔낼 것이다.
- 이문재(시인)
“나는 돌아와 일상을 예술로, 삶을 축제로 향유하며 살고 있다.
상상하고 성찰하는 힘, 표현하고 연결하는 힘이 강해졌다.
그 힘을 바탕으로 발견하고 배우는 순례자의 자세로 살고 싶다.”
순례는 나를 비우고 떠나 뜻밖의 것을 발견하는 것
템플스테이는 산사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후 템플스테이를 거쳐 간 사람은 2025년 기준 640만 명에 이른다. 가톨릭의 3대 성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2024년 방문객은 49만 9,249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중 한국 방문객은 7,910명으로 세계 10위였다. 템플스테이를 거쳐 간 사람의 절반 이상은 불교 신자가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의 상당수 또한 천주교인이 아니다. 이러한 종교적 체험이나 순례가 비(非)신자에게 인기인 가장 큰 이유는, 쫓기듯 사는 일상을 벗어나 자연에서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만 알던 무종교인의 캐나다 종교 공동체 체험기
프리랜서 방송작가와 시민교육가로 밤낮없이 활동하던 저자 주은경은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고 쉬어야 한다는 말에 캐나다로 향한다. 몸과 마음이 쉬고 싶었을 뿐,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몬트리올에서 석 달,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가톨릭 영성 공동체 마돈나하우스에서 두 달을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마돈나하우스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모아 『나의 오래된 순례, 마돈나하우스』가 탄생했다. 저자는 책에서 “종교를 초월해 영성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한 순례”라고 말한다. 이를 잘 반영하듯 저자는 마돈나하우스에서 마돈나하우스의 설립자 캐서린 도허티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으며 단순한 삶, 나누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마돈나하우스만의 수행 장소인 뿌스띠니아에서 24시간을 홀로 지내며 절대 고독을 경험하는가 하면, 마돈나하우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마돈나하우스의 철학인 청빈, 순결, 순명의 의미를 다시 새긴다.
고독과 영성, 단순한 삶과 공동체를 나의 삶에 어떻게 초대할 것인가
캐나다의 가톨릭 영성 공동체 마돈나하우스는 강 옆에 자리하고 있다. 나무가 많아 숲과 같은 곳이다. 저자는 하얀 눈이 나무와 세상을 뒤덮은 마돈나하우스에서 11월과 12월을 보내며 고독과 영성, 단순한 삶과 공동체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마돈나하우스에서의 경험은 한국에 돌아온 저자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림이나 연극, 춤을 통한 시민교육, 스스로를 위한 며칠 간의 순례, 단순한 삶을 위해 디지털 기기 사용을 지양하는 날, 순례를 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공동체 등. 바쁜 삶에 지쳐 스스로를 비우고 뜻밖의 것을 발견하기 위해 떠난 순례가 한순간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그의 삶 전반에 단순한 삶, 고독과 영성, 공동체 등의 이름으로 다시 자리 잡은 것이다.
인생의 엄청난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해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거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앞으로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삶에 지친 자신을 돌보기 위해 종교적 공간을 찾는 것이다. 종교적 공간은 단순한 삶과 공동체가 체화된 곳으로서, 조용하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전한 안식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종교적 공간에서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나의 오래된 순례, 마돈나하우스』는 종교적 공간에서 순례자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종교적 공간을 경험하기 전과 후의 한 개인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