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물길이 품은 경기의 시간과 얼굴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에서 한양도성 안 골목과 성벽, 그리고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던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최철호 소장이 이번에는 시선을 한양도성 밖으로 옮겼다. 성문을 나서는 순간 발아래 펼쳐지는 한강, 그리고 그 강이 품어온 경기의 마을과 나루, 바다로 이어지는 물길이 그의 새로운 여정이자 이번 책의 무대다.
전작이 한양도성 안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면, 『한강물길 따라 걷는 경기옛길』은 그 이야기가 산과 강을 넘어 서해까지 뻗어가는 기록이다. 양근에서 시작해 광주·성남·노량진을 거쳐 양천·파주·고양, 그리고 강화와 교동도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한강과 지류가 만들어낸 마을과 사람,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역사를 발로 걸으며 한 장 한 장 기록했다.
조선의 수군과 상인, 학자와 화가, 나그네와 망명객이 한강 물길을 따라 흘렀다. 정약용과 겸재 정선이 바라본 강변 풍경, 행주대첩이 벌어졌던 요새, 포구와 나루에서 오가던 물류의 소리… 이 모든 장면에서 물길은 국가의 숨결이자 생명선이었다. 저자는 길 위에서 발굴한 옛 이야기와 사라진 지명을 되살려 우리가 잘 몰랐던 한강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자료실 속 문헌을 옮겨놓은 기록이 아니다. 백사주이십리로 불렸던 여의도의 옛 풍광, 갯벌과 신앙이 공존하는 석모도의 바람, 황희 정승의 고향 반구정에서 바라본 임진강의 물빛… 페이지마다 발걸음의 숨소리와 강물의 파도 소리가 스민다.
여정의 끝자락, 조강과 교동도에 이르면 강은 서해와 맞닿아 분단의 경계가 된다. 저자는 군사분계선 너머 황해도의 산과 마을을 바라보며 물길이 다시 이어줄 미래를 그린다. 과거의 길을 복원하는 일은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일이며, 강을 따라 형성된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 첫걸음임을 일깨운다.
『한강물길 따라 걷는 경기옛길』은 강을 따라 걸으며 왜 이 땅이 ‘경기’였는지, 왜 강이 역사의 무대였는지를 묻는 인문 기행서다. 책장을 덮고 나면 한강변 어디를 걷더라도 발아래 깔린 수백 년의 시간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