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어떻게 권력의 도구가 되고,
대중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저자는 더블스피크가 단순한 말장난이나 수사가 아니라 대중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무기라고 경고한다. 정치 연설의 미사여구, 관료 조직의 난해한 전문용어, 광고 속 과장된 표현 등 다양한 형태의 더블스피크가 모두 진실을 흐리는 공범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는 겉으로는 소통을 가장하지만 실상은 생각을 멈추게 만들고, 잘못을 덮어 권력을 공고히 한다. 이 책은 언어 뒤에 숨어 작동하는 권력의 의도를 낱낱이 해부함으로써, 우리가 당연시했던 말들이 어떻게 우리의 시야를 가려 왔는지 깨닫게 한다.
1989년 초판 출간 이후 《더블스피크》는 언어와 권력 문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필독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을 둘러싼 ‘언어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오히려 더 교묘해지고 있다.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를 통과하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이 책의 통찰은 더욱 절실하다. 말의 이면을 읽어내는 눈을 뜨는 것, 그것이 혼돈의 시대에 진실을 지키는 첫걸음임을 《더블스피크》는 묵직하게 일깨워준다.
“언어의 목적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시민이 나라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문제들을 명확하고 정직한 언어로 토론할 수 없다면, 유권자들은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_윌리엄 러츠
은폐된 말, 가려진 의미, 삭제된 현실
《더블스피크》가 그 장막을 걷어낸다
‘더블스피크(이중화법)’라는 개념을 대중화하며 그 기만적 속성을 폭로해 온 윌리엄 러츠의 대표작 《더블스피크》가 국내 최초로 출간됐다. 러츠는 정치·경제·군사 영역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이중화법 사례를 수십 년간 추적하고 분석하며, 왜곡된 언어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약화시키는지 경고해 왔다. 《더블스피크》는 사회 곳곳에 스며든 언어 조작과 왜곡을 기록한 러츠의 오랜 탐구의 결실이다. 1989년 초판 출간 이후 지금까지 더블스피크에 관한 고전적 저작으로 평가받으며 정치 담론과 광고 언어 연구의 분석 틀을 제공해 왔다. (이번에 출간하는 한국어판은 2015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권력의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위한 지적 무기이자 생존 매뉴얼이 되어줄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아니라 ‘사고’? 주 69시간 노동이 ‘근로시간 유연화’?
-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에 넘쳐나는 이중화법
[계몽령] 2025년 1월 23일 탄핵심판 4차 변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변호인이 사용. 불법 비상계엄을 국민 계몽 조치로 미화하고 옹호하는 시도로 비판받았다.
[재의요구권] 2024년 6월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가 ‘대통령 거부권’을 지칭하며 사용. 법률 용어라는 근거를 내세웠지만 잦은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줄이려는 더블스피크였다.
[근로시간 유연화] 2023년 3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 주 52시간제를 유지한다고 했지만 연장근로 단위 확대를 통해 사실상 주 69시간 노동까지 허용하는 방침이었다. 장시간 노동을 ‘유연화’로 포장하는 말.
[이태원 사고] 2022년 10월 29일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부가 ‘참사/희생자’ 대신 ‘사고/사망자’라는 용어 사용을 지시했다. 사건의 성격과 책임을 희석하는 더블스피크.
[대안적 사실] 사실이 아닌 주장을 그저 “다른 유형의 사실”인 양 포장한 표현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진 말.
[고강도 심문 기법] 가혹한 고문. 미국 정부가 물리적, 심리적 고문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
[특별 군사 작전]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칭한 표현. 침략 전쟁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감추고, 공격 행위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부수적 피해] 미국 국방부가 군사 작전에서 민간인 사망이나 민간 시설 파괴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 민간인 학살·피해라는 현실을 ‘부수적’이라는 말로 축소해, 전쟁 책임과 도덕적 비극을 희석하는 전형적인 군사 더블스피크.
[희망퇴직]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미화하여 부르는 말. 겉보기에는 직원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강요에 가까운 해고 수단이다.
[4대강 살리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국가 하천 정비 사업 명칭. 대규모 토목공사를 생태 복원으로 포장하는 말.
[올바른 역사교과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사용한 표현. 국정화를 ‘올바름’으로 규정해 다양성과 비판을 가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옹호할 수 없는 것을 옹호하기 위한 말
흔히 ‘이중화법’으로 번역되는 더블스피크는 사실과 진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왜곡하거나, 심지어 정반대로 뒤집는 언어를 가리킨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에세이 〈정치와 영어〉(1946)에서 경고한 해로운 정치적 언어, 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언어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더블스피크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에 정치적인 말과 글은 주로 옹호할 수 없는 것을 옹호하는 데 쓰인다. …… 정치적인 언어는 주로 완곡어법과 논점 회피, 그리고 순전히 아리송한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 정치적 언어는 …… 거짓말을 진실처럼 들리게 만들고, 살인을 존경할 만한 행동으로 만들며, 순전한 풍문을 확실한 사실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 _24, 25쪽
이중화법은 “부주의나 게으른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치밀한 사고의 산물”이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대중의 정신을 조종하기 위해 고안된 언어다.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 말한” 것일 뿐
저자는 이중화법의 남용이 표현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대중의 사고와 공적 담론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언어가 정치적 힘을 행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감시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일깨운다.
“이중화법의 목록은 끝이 없으며, 만약 당신이 이 문제에 계속 관심을 기울여 왔다면 자신이 목도한 사례를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 모두 이 문제에 관해 적극적인 비평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중화법을 인식하고 맞설 때 비로소 우리의 언어에서 이중화법을 걷어내는 진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책이 사실을 감추는 대신 드러내고, 책임을 회피하는 대신 받아들이고, 사고를 방해하는 대신 촉진하는 공적 언어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참여자가 서로 상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여는 데도 힘이 되기를 바란다.” _머리말
“우리는 언어의 비판적 소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책을 다룬 한 인터뷰에서 러츠는 “이 책이 실제로 세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를 기대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러츠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이 책이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 매뉴얼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언어의 소비자로서 깨어 있길 바라는 겁니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꼼꼼히 따져보는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하지요.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도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는 상품의 소비자인 동시에 언어의 소비자니까요. 우리는 언어의 비판적 소비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부 담화, 공공기관의 문서, 법률 용어, 기업 광고에서) 허술하고 결함 있는 언어를 만나면 고장 난 가전제품을 반품하듯이 돌려주고 "제대로 된 언어, 명료한 언어"로 바꿔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