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은 나라를 품었지만, 총은 조정을 겨눈다
- 질투와 배신 속에 충절은 어디까지 허락돼야 하는가
『칼은 충을 품고 총은 역을 쏜다』는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전쟁 속에서 드러난 권력자의 질시와 무능, 그리고 일개 권력자에 대한 충성과 나라에 대한 진정한 충성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특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선조의 질투와 위기의식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음에도 선조는 전황을 반전시켜 나라를 되살린 이순신의 공을 시기하고, 그를 견제하는 데 힘을 쏟는다. 이러한 군주의 편협함은 전쟁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며, 백성과 나라보다 자신의 권위와 체면을 우선시하는 군주의 민낯을 드러낸다.
작품 속 조정 신하들은 나라를 살릴 계책을 세우기보다 자신의 자리와 목숨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 겉으로는 충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눈치와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정치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터가 아닌 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과 모략은, 때로 왜군보다 더 큰 위협이 되어 조선을 병들게 한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류성룡과 이순신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류성룡은 끝까지 전황을 수습하고, 무너져 가는 국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순신은 병력과 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전략과 지략, 강한 의지로 바다를 지켜 낸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신뢰와 존경이 깔려 있으며, 함께 나라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칼은 충을 품고 총은 역을 쏜다』는 전쟁의 승패 과정보다 올바른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이 소설은 자멸과 붕괴의 징조가 뚜렷한 당시의 조선에서 당시 제1의 무장력을 갖췄던 이순신이 썩은 조정을 무너뜨리고 고통받는 민초들에게 새로운 나라를 선사한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설 속의 숨은 주인공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자신의 삶을 던지고 또한 좌절해 간다. 소설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묵직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