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얽힘의 인문학’인 이유는 인간 이해의 핵심이 관계이고, 인간 주변 환경(사회, 문화, 정치, 생태 등) 이해의 핵심 역시 관계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를 과학적으로 풀면 ‘얽힘’이죠? 양자역학의 중첩 현상과 양자 얽힘 현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양자(quantum, 量子)’라는 단어는 ‘분리될 수 없는 에너지의 가장 작은 단위’를 뜻합니다. 물리학에서는 ‘상호작용과 관련된 모든 물리적 독립체의 최소 단위’입니다. ‘미시세계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양(量)’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가령 빛의 광자와 원자의 전자, 진동의 단위 입자인 음향양자 등이 있습니다.
거시적인 세계에서 연속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가령 ‘선’)이 미시적인 세계에 들어가 보면 불연속적인 세계(선이 ‘점’들의 연속)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최솟값의 단위로 셀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양자’라고 부릅니다. 쉽게 생각해, 하늘 높이에서 보면 점 하나로 보이는 운동장에 아이들이 띄엄띄엄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광자, 전자, 음향양자입니다.
사실, 양자역학에서 ‘역학(力學)’이라는 말은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입니다. 고전역학은 ‘뉴턴의 운동법칙’을 만든 뉴턴의 이름을 따 ‘뉴턴 역학’이라고 부르는데, 움직이는 물체를 다루는 동역학(動力學)과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다루는 정역학(靜力學)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전역학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매우 정확하게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계에서는 상대성이론이, 원자 단위와 같은 극히 미세한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계에서는 ‘양자 마당 이론(양자장론, 입자물리학의 이론적인 바탕으로 양자역학과 특수 상대성 이론을 결합한 이론)’이 있습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양자가 어떤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를 밝히는 이론입니다.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돌아다니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그런데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이 중첩, 얽힘의 특성을 갖습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입니다.
양자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란 코펜하겐 학파의 전자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드러납니다. 곧 “전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확률적으로 존재 가능한 모든 위치에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관측되는 순간 하나의 위치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여러 가지 상태가 동시에 중첩되어 있기에 서로 간섭하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관측되는 순간 다른 곳에 존재할 확률이 없어지고 하나의 위치로 결정되기 때문에 관측된 후에는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 여러 명 놀고 있는데(이때 관찰자는 운동장을 보지 않았을 때입니다), 운동장을 보면 한 아이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복권 긁기로 생각해 볼까요? 복권을 긁어보기 전에는 당첨된 상태와 당첨되지 않은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긁는 순간 둘 중 하나로 결정되면서 다른 하나의 상태가 될 확률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양자중첩의 확률론을 부정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양자역학은 정말로 인상적이다. 하지만 나의 내면 목소리는 내게 이것이 아직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론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지만, 옛 존재(Old One)의 비밀을 밝혀주지는 않는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신이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러자 닐스 보어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신이 주사위 가지고 뭘 하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이러한 양자중첩은 동양사상의 태극, 혹은 음양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코펜하겐 학파의 요람인 보어 연구소의 소장인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영감을 얻은 것이 동양철학의 주역(周易)의 원리라고 합니다. 보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태극은 음과 양 그리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중성이 있으며, 이미 물리학에서는 중성은 한 개가 아니고 두 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양자물리학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동양철학을 많이 참고하였다.”
물론,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 그러하지 아니하고, 그러하다)과 불교의 즉비(卽非)의 논리(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 등도 같은 맥락입니다. 특히 양자얽힘(entanglement)은 두 개의 양자(혹은 두 개 이상)가 거리에 관계없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합니다(정확히 말하면, 두 개가 아닌 여러 양자계 사이에도 작용합니다). 곧 쌍으로 생성된 양자가 하나의 성질이 결정되면 떨어져 있는 나머지 하나도 성질이 결정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곳 운동장에 놀고 있는 아이의 정체성을 알게 되면 수십억 광년 떨어진 외계 행성에 있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보다 만 배 이상 빠른 상태로 서로의 상태가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동에 의한 전달이 아닌 얽혀서 서로 즉각적으로 바뀌는 상태라 할 수 있어, 속도나 시간의 개념으로 상상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신적 영역입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이것도 받아들이지를 않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은 특정 시공간에 국한되는 국소성(locality)을 갖는다. 따라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입자가 정보 교환 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서 국소성이란 ‘한 공간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이와 분리된 다른 공간적 영역에서 일어난 작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비국소성(non-locality)은 위의 국소성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데, 양자
론은 이러한 국소성의 원리(principle of locality)를 위배합니다.
이렇게 양자얽힘은 자연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원자보다 작은 세계인 아원자 세계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미시적 신적 영역을 인간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은, 최근 과학계의 양자역학을 통해 인문학을 하는 흐름이 있는데, 바로 그 흐름에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곧 인간의 인성을 성찰하며 주변 다양한 환경을 양자역학의 얽힘이라는 화두로 풀어보려는 것입니다. 핵심은 바로 앞서 말씀드렸듯이 관계입니다. 그리고 관계란 서로 얽혀있는 것입니다(인성은 그 얽힘에 대한 존중이죠?). 따라서 책 제목을 ‘얽힘의 인문학’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인간과 환경에 관한 글 58꼭지를 얽혀서 펼쳐 보입니다. 인성교육과 인간 이해, 나아가 동물, 사물, 환경을 이해하는 글들입니다. 대학생들의 교재로 집필하였지만, 자연과학적 사고를 통해 인문학의 풍성함을 맛보려는 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오류나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많은 조언을 구하며, 출간 후 나올 수 있는 수정사항 등은 자유아카데미 홈페이지 자료실(www.freeaca.com)을 통해 게시될 예정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