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복판, 퇴근길 버스에서 시작된 기묘한 인연.
공황과 불안, 그리고 우연이 교차한 순간, 주인공은 ‘백발노인’과 ‘초록여자’라는 두 인물을 마주한다. 그들은 느닷없이 화자의 삶에 침입해 귓속에 목소리를 심고, 보이지 않는 화살을 가슴에 쏘아 올린다. 화살에는 ‘manager’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은빛 실과 로즈마리 향이 스쳐 간 그 체험은 과연 현실일까, 아니면 무너져가는 정신이 빚어낸 환상일까.
『천사와 매니저』는 현실과 환상을 교묘히 넘나들며 인간 내면의 고립과 구원, 욕망의 어두운 심연을 탐구한다. 광화문 시위의 지겨운 소음, 낡은 버스의 눅눅한 공기, 취객의 숨결까지 살아 있는 감각 묘사는 독자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강하게 끌어들이고 그 혼잡한 풍경 속에서 작가는 “날개가 잘린 앵무새”라는 은유를 펼쳐 보인다. 자유를 잃은 채 타인의 말만 되풀이하는 존재-그것은 한 마리 새가 아니라, 오늘을 버텨내는 우리 모두의 초상일지 모른다.
치과의사 현우는 그러한 대중과 자신을 분리해 정서적 결핍은 있을지 모르나 스스로를 합리주이자라 자처한다. 그러나 초록머리 여인 은설희를 만난 뒤, 견고하다고 믿어온 현실과 사고가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한다. 열역학 법칙과 화학의 언어를 중얼거리던 그녀의 입에서 ‘천사’와 ‘관리인’이라는 낯선 말이 흘러나올 때, 이야기는 은밀한 중심부로 빨려 들어간다. 그 여정 속에서 작가는 인간관계의 상처와 상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가장된 냉소와 회피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천사는 존재할까. 아니, 우리에게 그런 천사가 필요할까?
이 소설은 단순한 초자연적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판타지라는 외피를 빌려, 우리가 짊어진 고립의 무게와 ‘구원받고 싶은 마음’을 날카롭고도 서정적으로 포착한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독자는 주인공 현우의 불안과 혼란, 그리고 그 미묘한 끌림에 함께 흔들리게 된다.
결국 『천사와 매니저』는 “누군들 외롭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넘어, 그 외로움이란 “우리가 누군가의 용서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앵무새 같은 삶에 지쳐, 다 갚지 못한 빚을 안고 살아가는 독자들이라면-광화문 버스에 오른 현우와 함께 스스로 꽁꽁 숨겨두었던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관리인’을 떠올리며 이렇게 고백하게 될지 모른다.
“모두, 누군가의 용서에 빚진 사람들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