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해제’ 문서로 복원한
현대 한국 정치사의 진실과 공백
《기밀 해제, 그 시대의 민낯》은 정권 교체와 민주화를 통해 비로소 ‘기밀 해제’된 문서를 기반으로 해외 자료를 포함한 수많은 자료들을 검토하여, 1970~80년대 한국 정치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다시금 추적한 책이다. 김대중 납치 사건부터 박정희 대통령 암살, 5·18 민주화운동, 아웅산 폭파 사건과 IMF 금융위기, 남북 정상회담까지 국내외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었다. 또한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일본인 목격자에 대한 수사 결과 등 해외 자료를 대조하여 기록의 빈틈을 메움으로써 사건의 흐름을 새롭게 복원하기도 했다.
한국 정치사는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변화를 거쳐 왔다. 독재와 군사정권, 민주화 그리고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착까지….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격변의 기록이다. 첨예한 갈등과 은폐가 뒤엉켰던 시대, 진실은 감춰지고 왜곡됐다. 필자는 진실규명에 나섰던 ‘진실위원회’의 조사 결과 및 의의와 함께, 그 한계까지도 짚어 낸다. 여전히 우리는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다지 조명받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공백들을 이 책에서는 성찰의 장소로 삼는다. 그는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 이상 바랄 수 없는 영광”이라며 단지 독자가 판단을 내릴 길을 열어 줄 뿐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배울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학문을 닦은 학자,
냉정과 열정으로 기록하다
격동의 한국 정치사를 읽을 때는 객관적 시각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필자는 냉철하게 사실을 드러내 보이며 단지 독자가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외부자의 냉정과 내부자의 열정을 함께 지닌 필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을 뿐 아니라, 일본으로 건너가 연구에 정진하면서도 한국과의 연을 지속적으로 이어 온 학자다. 평생토록 한일 사이의 가교로 살아오면서 김대중, 김영삼 등 한국의 정치지도자와 직접 교유했으며, 한국과 일본 정치지도자 간의 연을 이어 주기도 했다. 그러한 경험이 이 책에도 녹아 있다.
이 책 또한 본래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넘어, 고난 속에 발전해 온 한국 정치사를 일본 독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양국을 연결하기 위해 집필됐다. 이후, 현지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한국 독자에게 더욱 필요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아들여, 일본어로 된 책을 직접 번역하고 보강하여 한국어판을 선보이게 됐다. 그는 사건의 내막을 드러내는 동시에 당시 한국 사회를 외부에서 바라본 기록 및 반응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조차도 새롭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과거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일이야말로 오늘을 점검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명료하게 보여 준다. 독자는 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놓쳤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기밀이 풀려난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일 - 과거의 경험에서 학습하여 더 나은 내일, 공존과 화합으로 향하는 일, 《기밀 해제, 그 시대의 민낯》은 그 출발선에 놓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