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인력을 줄이지만, 일을 외주화하지도 않는다
200년간 이어온 무거운 문명의 종말
시대의 마음을 캐는 작가 송길영은 그동안 두 권의 《시대예보》에서 지능화와 고령화라는 사회적 현상을 폭넓게 살펴봄으로써 삶의 태도의 변화, 평생직장의 몰락, 조직의 극소화와 유동화로 인한 경량조직의 탄생을 예견했다. 조직은 작아지고 개인은 커지는 현상은 인공지능의 도입과 함께 미래를 더 빠르게, 더 극적으로 재편한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기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속화되는 사회의 변화 속도는 따라잡기가 점점 힘든 것이 되고 있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는 분업화를 통해 필요한 물건을 풍족하게 제공하는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이를 다루는 영역의 전문성이 깊어졌고, 요소요소의 발전 단계마다 전문가들이 포진하면서 조직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그만큼 무거워졌다. 조직은 거대할수록 경쟁에서 유리했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중량문명의 모습이다.
하지만 무겁고 거대한 문명은 필연적으로 느리기 마련이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속도의 변화에 발맞춰 가기 벅차다. 새로운 시대에 생존을 가르는 것은 이제 규모의 경제가 아닌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힘이다. 그러려면 더욱더 가벼워야 한다. 거대함이 사라진 빈자리는 ‘부지런한 지능’과 ‘거대한 지능’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함께 새롭게 맞이할 ‘경량문명’의 시대다.
지금 만나는 사회, 잠시 만나는 사회, 다시 만나는 사회
경량문명인에게 필요한 자세를 탐구하다
송길영 작가가 제시하는 새로운 키워드 ‘경량문명’은 인공지능을 만난 인류가 가져올 조직과 개인의 거대한 변화를 명쾌하게 정의해준다. 그는 특히 협력의 방식이 바뀌게 된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한다. 바로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로, 이 두 축의 패러다임 변화는 서로 호응하며 증폭하는 한 쌍이 되어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인공지능의 범용화는 개인이 할 수 없어 외부에 맡겼던 일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며, 이렇게 증강된 개인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갑을관계로 고용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발전하고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수평적 협력으로 일하고 성과를 낸다. 협력의 경량화다. 가벼운 협력은 필요에 따라 빠르게 뭉치고 흩어지는 특징을 가진다.
모든 사람이 일상을 함께하고 공동체 중심으로 생산하던, 농사철 품앗이의 문명이 이제 저물고 있다. 저마다의 지혜가 각자의 인공의 지능과 결합하고, 작은 규모의 모둠으로도 커다란 진보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경량문명에서 더는 거대함이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핵개인을 돕고, 협력은 작아진 단위에서 더 깊어진다. 우리는 덜 소유하고 더 연결되며, 덜 의존하면서도 서로를 더 위하게 된다. 무겁던 질서는 해체되고, 느린 조직은 추락한다. 이때 생존을 가르는 것은 덩치가 아니라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문명을 먼저 이해하는 자만이 다음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