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무당, 도사, 역술가, 관상가, 지관 그리고 귀신
과학 문명에 역행하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들의 정체를 밝히다!
조선 시대에 명과학겸교수라는 관직이 있었다. 양반과 천민의 중간 계급인 중인이 주로 응시하고, 종6품으로 직책이 높지는 않았으나, 왕실의 은밀한 일들을 다루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국가 주요 행사의 날짜를 택일할 뿐 아니라, 관상과 사주팔자를 통해 왕자와 공주의 혼인 대상자를 판별하는 등 왕실 혼사에 깊이 관여했기에 권력의 향방을 좌우하는 저울추가 일정 부분 그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실제로 반란 사건에 명과학겸교수가 개입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왕실의 어의는 은퇴 후에 시중에서 개업이 가능했지만, 왕실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명과학겸교수는 은퇴한 뒤에 세상에 없는 존재로 살아야 했다. 고려 시대에는 주금사가 있었다. 역시 직책이 낮았으나, 왕실 전속으로 일반 관리보다 높은 녹봉을 받았다. 주문을 외워 병을 쫓고 액운을 물리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었다.
인류가 무리를 형성한 이래로 신앙과 종교는 가장 강력한 권력이었다. 제천 의식을 주관한 제사장이 곧 정치 지도자였던 정교일치(=제정일치) 사회를 지나 정치와 종교가 어느 정도 분리된 중세 시대에도 무당(주술사)과 승려(성직자)는 황제와 국왕의 자문역으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고, 심지어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교황의 권력이 황제의 힘을 능가했다. 이슬람교와 힌두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일을 법적으로 금하는 오늘날에는 어떨까? 여전히 종교와 신앙은 정치권력의 풍향계가 되는 주요한 변수로서 힘을 떨치고 있다. 단순히 어떤 종교 세력이 ‘머릿수’로 밀어붙여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믿음’이 현대인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공직자, 법조계 인사 등 정치권력에 가까운 집단일수록 그러한 믿음을 신봉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이러한 현상은 많은 사람이(권력자일수록 더) 세상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거나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과학을 신봉하는 무신론자도 일부러 터부(taboo)를 거스르지는 않으며 불길한 내력과 기운을 가진 장소는 피한다. 우리 편을 응원하고 뜻을 이루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행위 역시 현실을 초월하는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신’이라고 일컫는 영역에 속하는 행위와 믿음은 과연 실질적인 효능을 발휘하는가? 과학과 합리적 사고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가? ‘미신’이 마냥 허상이고 사기이자 일시적 유혹이라면 그토록 오랜 시간 인류가 신봉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이 책 『팔자를 고치다 : 조용헌의 운세 이야기』는 명확하게 답한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미지의 힘은 분명 존재하며, 이러한 힘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팔자와 운명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모자람을 채워 삶을 보완하고 생명을 담보한 고대의 기술과 지혜
미신은 수만 년 동안 인류가 축적해온 관찰과 경험의 결과물이다!
『정감록』과 『격암유록』 등 비기(祕記)와 예언을 수록한 책에는 ‘십승지지(十勝之地)’라는 특별한 장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십승지지는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난리와 재난이 닥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열 군데의 땅을 일컫는다. 실제로 이들 마을에 살았던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6ㆍ25 전쟁이 터졌을 때도 전쟁이 난 줄 모를 만큼 평화롭게 지냈다고 전해진다. 십승지지는 전쟁과 전염병, 자연재해 등의 환란이 발생했을 때 국가와 공권력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던 민초들이 살아남기 위해 마련한 자구책이었다. 그냥 대충 지도와 땅의 생김새를 보고 찍은 게 아니라, 살 방도를 찾기 위해 한반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도사와 떠돌이 민초들이 발견한 땅이었던 것이다. 풍수지리설의 풍수(風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이다. ‘바람은 막고 물은 얻는다’는 뜻. 태곳적부터 인류는 맹수의 공격과 찬이슬을 피하고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주거지를 원했다.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살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 풍수지리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풍수지리설의 이론적 토대가 마련된 시기가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란한 시기였던 춘추전국 시대(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였다는 사실도 이 사상이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실질적인 지식이자 기술이었음을 말해준다.
풍수지리와 마찬가지로 사주팔자와 관상, 손금, 궁합, 도참(앞날의 길흉을 예언하는 술법), 점성술, 해몽 등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미신’이라고 이야기하는 믿음과 행위 역시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인류의 오랜 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어떤 현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얻은 수십만에서 수만 년에 이르는 통계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때에 태어난 사람은 이런 운명을 타고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성격과 능력은 생김새에 따르고, 따라서 얼굴의 생김새가 팔자에 영향을 미친다… 불 기운이 강한 사람이 물 기운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열정이 사그라지는 대신 신중해진다… 이런 손금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이 정도의 건강과 재물을 누리더라… 등등 어떤 결과에 이르도록 만든 갖가지 원인을 따지고 분석한 사람들의 오랜 지식이 ‘미신’을 이루는 몸통인 것이다.
물론 조상신이나 동자신 등의 귀신이 든 무당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무당은 경험이나 공부를 바탕으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의 능력을 빌린다.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하지만 종교와 신앙의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해괴한 일이 목격되고 심심찮게 기적이 일어난다. 유일신 신앙을 전하는 대중 종교의 경전에서는 ‘마귀 들린 사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가톨릭 사제 가운데에는 퇴마 의식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 고대의 철학자들도 인간은 육체의 단계를 지나 영혼의 단계에 이른다고 보았고, 고인의 혼백을 위로하는 장례 의식은 아주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믿든 안 믿든 영적 세계는 현대 과학 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현대인의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전통 신앙은 결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가운데 습관적으로 이어온 어리석은 관습이 아니다. 자연의 이치와, 인생과 세상이라는 시공간이 빚어내는 순리(順理)가 작동하는 방식에 순응하거나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오랜 지혜의 총체다. 그것을 수용하고 안 하고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과학이 보편화되고 대중화되기 이전 인류의 선조들이 의지하여 길을 묻고 지혜를 구했던 세계를 탐구하는 일은 그것대로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나의 팔자를 알면 세상살이가 보다 유리하고 수월해진다!
불운을 잘라내고 삶을 이롭게 하는 미신 사용 설명서
고대 인도에서는 인간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상과 그렇지 않다는 사상이 대립했다. 그러다가 두 의견이 합의를 본 것이 ‘7/3론’이다. 한자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표현한다. 운에 좌우되는 부분이 70퍼센트이고, 나머지는 재주와 노력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조용헌은 보다 극단적이어서 ‘9/1론’을 주장한다. 타고난 팔자와 성정이 90퍼센트이고, 교육과 노력이 차지하는 부분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 왜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사람은 자기 팔자를 알아야만 올바른 인생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주변이 흐트러지거나 어수선한 것을 견디지 못한 사람은 매사에 정리정돈을 잘하는 팔자를 타고났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환경미화원이 될 것인지, 청소 용역 업체의 직원이 될 것인지, 청소 전문 기업의 CEO가 될 것인지는 10퍼센트의 노력에 달린 문제다. 팔자에 재물운이 없는 사람은 공직에 진출하는 것이 맞다. 재물운이 없어서 부자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금전 비리에 연루되지는 않아서 청렴한 공직자가 되고 주변의 존경을 얻을 수 있다. 재울운 없는 사람이 과도하게 탐욕을 부리면 결론이 좋지 않다.
자신의 팔자를 아는 사람은 타고난 팔자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최선의 삶을 살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것이 현명한 인생살이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번듯한 직업에 종사하고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도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팔자에 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품어온 뜻이 있는데도 단지 수능 점수가 아까워서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도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운명에 저항하면 끌려가고, 운명에 순응하면 업혀 간다.”
이 책은 미신에 속하는 믿음과 행위가 현실에서 구현된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룬다. 구전되어온 이야기도 있고, 저자가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실제 사례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초현실적이고 미스터리한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일 역시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다만 강력한 힘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타인을 짓밟고 탐욕을 채우기 위해 ‘힘’을 악용하는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어떻게 해야만 전통 신앙의 지혜를 합당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조용헌의 이 책이 가장 좋은 길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