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민주주의의 정신과 특성은 어디서 오는가
막스 베버의 시선으로 살피는 미국의 정치문화
오늘날 많은 이들이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한다. 정치권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고, 공동체 의식은 붕괴되었으며, 사회 전반에 사적 이익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소수의 부유한 정치·경제 엘리트가 시민사회를 장악했고, 중산층은 이러한 흐름에 저항할 힘을 상실했다고 분석한다. 한때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뒷받침했던 미국 민주주의의 정신은 진정 사라져버린 것일까.
『미국 민주주의 정신을 찾아서』의 저자 스티븐 캘버그는 이러한 진단이 주로 미국 민주주의의 ‘현상’에만 집중할 뿐, 그 근간을 이루는 민주주의의 관습은 간과했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관점을 토대로 오늘날 미국 정치문화의 구체적 윤곽을 드러내고,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해석을 제시한다. 저자는 베버의 사상을 바탕으로 미국 특유의 민주주의 정신을 규정하고, 장기적이고 복잡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미국 민주주의 정신을 파악한다.
▶ 미국 민주주의의 독특한 특성, 종교적 가치와 공생적 이원주의
베버는 17세기와 18세기의 종교적 가치가 미국 정치문화 발전의 노선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금욕적 프로테스탄트는 체계적인 노동과 지속적인 이윤 추구를 통해 세상을 신의 영광을 기리는 풍요로운 왕국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퓨리턴은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세계 지배 개인주의를 따랐으며, 독실한 신자들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혁신에 참여하고, 사회 전반의 변혁을 추구해야 했다. 이처럼 베버는 초기 미국 정치문화에서 세계 지배 활동을 지향하는 개인주의와 종교적 가치가 스며든 공동체 지향성을 발견한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병치된 이러한 공생적 이원주의는 미국 특유의 강렬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미국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정신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프로테스탄트 종파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 정신은 18세기 미국의 정치문화뿐 아니라 다양한 클럽, 시민단체 등을 통해 육성되고 시행되었다. 종교적 가치는 세속적 커뮤니티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미국인의 삶 구석구석에 침투한 수많은 집단과 클럽, 사회적 그룹들이 종교단체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계승했다. 개인적 요소와 시민적 요소는 긴밀하게 연결되고 충돌하며 미국 정치문화에 역동성을 불어넣었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며 퓨리터니즘은 세속화되어 실용적-윤리적인 시민적 개인주의로 변형되었다.
베버는 미국 종교의 역사에 깊은 뿌리를 둔 탄탄한 시민사회가 20세기에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시화, 선진 산업화, 탈산업화, 대대적인 소비주의 등의 환경에서는 실용적-윤리적 개인주의가 쇠퇴하고, 오로지 자기 이익과 감정적 욕망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실용적-합리적 개인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베버의 분석을 보완하는 모델을 제시하며, 미국 시민사회의 과거와 현재 활동 전체를 개념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구성한다. 이런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서는 보다 두텁고 넓고 독립적인 시민사회 모습이 드러나는 반면, 반대쪽 끝에서는 보다 엉성하고, 좁고, 종속적인 형태의 시민사회 모습이 드러난다. 저자는 오늘날 정치영역의 중요한 변화가 이러한 스펙트럼을 따라 발생한다고 말한다.
▶ 12·3 계엄 등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문제를 베버의 시각으로 살피다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으로부터 직접 이식되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 민주주의와 크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혼란이 고질적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관습과 한국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관습이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역자 이현휘는 두 편의 해제를 통해 미국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관습의 특성을 포착하고, 그것이 한국 고유의 관습과 어떻게 다른가를 밝힌다. 또한 베버의 시각에서 ‘12·3 계엄’의 원인을 검토하며, 계엄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한국 정치문화의 구조적 원인을 추적한다. 책의 말미에 실린 해제는 캘버그의 분석과는 다른 시각에서 미국 민주주의 정신을 파악하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에 던지는 함의를 생각할 수 있도록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