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근대 이전까지 일본인들에게 문장의 기본은 한문이었다. 반듯한 문장은 한문이 바탕이었고, 일반 서민들은 ‘문장’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언문일치체 운동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서양 문학과 학술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언문일치체가 고안되었고, 일본어 문장은 서양어의 어투와 구조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30년대에 이르자 신문과 잡지 등 대중 매체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대중들도 문장 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등장한 것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장독본』이었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문장이란 무엇인가’에서는 현대문과 고전문, 일본어 문장과 서양어 문장의 구조적 차이를 밝히고 있다. 특히 서양어와의 대비를 통해 어휘가 적고 구조는 불완전한 일본어의 약점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낸다. ‘2장 문장을 능숙하게 쓰는 법’에서는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글을 반복해서 읽고, 직접 써보면서 자신만의 감각을 갈고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3장 문장의 요소’에서는 다니자키가 선별한 문장의 6가지 요소(용어, 어조, 문체, 체재, 품격, 함축)를 중심으로, 장황하게 말하는 것을 삼갈 것, 말투를 거칠게 쓰지 말 것, 경어나 존칭을 소홀히 하지 말 것, 문장 끝의 어미에 변화를 줄 것 등등 상세한 설명을 이어간다.
문장을 잘 쓰고 싶은 대중을 위해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서문에서 “이 책은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대중을 위해 썼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 간단명료한 표현들로 읽기 쉽게 쓰여 있어선지 다니자키가 강연에 나서 청중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예문 중에는 고전이나 외국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잡지에 투고한 글을 다니자키가 첨삭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문장 대가의 손을 거치자 과장되고 장황했던 문장이 깔끔하게 탈바꿈한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장을 바짝 조여 간결하게 쓰는’ 퇴고의 단계까지 나아간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글을 쓸 때 자주 범하는 실수를 마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 작가가 어떻게 퇴고를 하는지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마음가짐
“『문장독본』은 문장 작법에 대한 실용적 조언을 넘어, 자기 언어에 대한 성찰과 문장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묻는 책이다. 단순히 문장을 잘 쓰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어떤 언어를 쓰며, 그것이 어떤 문화적 배경과 구조를 지녔는지에 대한 인식 없이는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옮긴이 해설’에서
이 책에서 다니자키는 ‘일본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의 시작에는 외국어가 물밀 듯이 밀려와 일본어를 새롭게 바꿔가던 시대적 흐름이 있었다. 이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2025년 지금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네 언어생활은 신조어, 축약어, 속어 등이 시시각각 등장하고, 즐겨 썼던 단어들이 표준어로 인정되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진다. 이에 더해 외국어인지 한국어인지 헷갈리는 단어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 지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고심하며 글을 쓰지 않아도 생성형 AI만 있으면 사용자가 원하는 글을 금방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바쁜 현대사회에 걸맞은 이 신기술의 등장 덕분에 시간과 글을 쓰는 노력까지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생성형 AI가 만든 문장은 논리정연하고 문법도 완벽하다. 하지만 문장의 외형이 완벽하다고 해서 사상까지 문장 안에 온전히 담아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니자키에게 언어란 곧 사고의 형식이며,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사상과 미의식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는 좋은 문장을 쓰는 관건은 기교나 기술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있다고 보았다. 이 명제는 문장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빠름과 많음을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글쓰기를 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이끈다. 이 책은 ‘독본’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결국 글을 쓰는 정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