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라디오 〈작은 서점〉 ‘장강명의 인생책’
『어린이라는 세계』 저자 김소영 추천!
“릴케의 문체는 읽는 사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조각이나 예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릴케와 로댕을 잘 모르더라도 책의 첫 장을 펼치면 금세 그 안으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오래 곁에 두게 될지도 모른다.”
위대한 조각가의 손끝에서 시인은 무엇을 보았는가
릴케가 기록한 로댕의 삶과 작품, 그 깊은 시선의 비밀
로댕의 작업실은 단지 흙과 석고, 대리석이 놓인 공간이 아니라 형태가 탄생하는 생명의 현장이었다. 릴케는 그곳에서 일상을 함께 보내며 로댕의 손이 사물의 본질을 더듬고 빛을 따라 면을 찾아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에게 로댕의 손은 듣는 귀를 가진 손이었고, 릴케는 로댕의 삶을 경청했다.
『릴케의 로댕』은 릴케가 로댕의 작업을 관찰하며 느낀 위대함을 릴케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낸 사유의 기록이다. 로댕의 전기 집필을 의뢰받고 1902년 8월 28일 파리에 도착했을 때 릴케는 이 대도시에서 무명에 가까운 존재였다. 반면 62세의 로댕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명성을 얻고 있던 조각의 대가였다. 위대한 조각가와 위대한 시인의 교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해 말 릴케는 『로댕론(Auguste Rodin)』을 완성하였고 이 원고는 이듬해 3월말 ‘예술(Die Kunst)’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다. 이것이 이 책의 1부에 해당한다. 릴케는 1905년에 드레스덴과 프라하에서 로댕에 관한 강연을 하였는데 이 강연내용이 책의 2부로 수록되었다. 릴케의 행적이 포함된 로댕 연보가 담겨 있으며 릴케 전공자의 역자 해설은 릴케와 로댕을 이해하는 좋은 안내자가 된다.
두 예술가가 말하는 몰입과 사색의 미학
릴케가 로댕에게서 발견한 가장 큰 가르침은 ‘서두르지 않는 성실함’이었다. 로댕은 단 한 번의 끌질이 작품 전체의 생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평생을 두고 형태를 완성해 나갔다. 실패와 시도가 끝없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그는 결코 조급해하지 않았다. 릴케는 이러한 태도를 조각가만의 덕목이 아니라 모든 예술가에게 필요한 정신적 근육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책은 예술가만을 위한 예술서가 아니다. 삶을 빚어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안내서다. 로댕이 남긴 작품과 릴케의 문장을 함께 읽다 보면 조각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 형태를 완성하기 위해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 시인이 예술가 곁에서 기록한 빛나는 여정이다.
예술가와 예술가의 만남이 만들어낸 특별한 기록
릴케와 로댕은 서로의 예술관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이 책은 그 거울 속에 비친 두 예술가의 초상화다. 릴케는 로댕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방법론을 새롭게 세웠고, 로댕은 릴케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작업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새로이 발견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가 나눈 교감은 작품 해설을 넘어 예술이 예술을 키우는 방식을 보여준다. 독자는 페이지마다 흐르는 이 특별한 긴장을 따라가며,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