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동시’를 ‘어린이시’와 명확한 구분 없이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동시와 어린이시는 엄연히 다릅니다. 동시는 어른인 창작자가 어린이를 위해 쓴 시이고, 어린이시는 어린이 스스로 쓴 시입니다. 동시는 ‘동심’을 쫓아 쓰고, 어린이시는 ‘아동성’에 따라 씁니다. 시를 짓는 방법도, 시를 읽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책고래숲 시리즈 신간 『나쁜 아이는 없다』는 어린이에 대한 이해와 어린이 시 읽기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어린이시론서입니다. 현장교육전문가 오인태 선생님이 20년간 어린이를 연구하며 쌓아 올린 성과와 철학을 한 권으로 엮었습니다.
저자는 수천 편의 어린이시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아이들의 언어와 인지 특성을 ‘동일성, 현재성, 집중성’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풀었습니다. 어린이가 대상을 자기와 하나로 보는 동일성, 모든 시간을 현재로 살아 내는 현재성, 눈앞의 세계에 몰두하는 집중성은 그 자체로 시의 본질이자 어린이만의 고유한 심리적 자산입니다. 이 세 가지 속성이 어떻게 사라지거나 변형되는지를 학년별로 추적하며, 아이들이 자아의식과 관계 인식, 언어 감각을 어떻게 키워 나가는지를 생생한 사례와 함께 보여 줍니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집 앞 골목에서 채집한 아이들의 시와 말들은 때로 웃음을 주고, 때로 가슴을 저리게 하며,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저자인 오인태 선생님은 교육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이들의 삶과 마음을 오래도록 기록해 온 시인이자 교육자입니다. 1962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진주교육대학교와 대학원, 경상국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36년 넘게 초등교사, 장학사, 교육연구사, 교장으로 교단과 교육 행정을 오가며, 시인과 아동문학평론가로서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 왔습니다. 1991년 문예지 『녹두꽃》을 통해 등단한 이후 시집 『그곳인들 바람불지 않겠나』, 『혼자 먹는 밥』, 『등뒤의 사랑』, 『아버지의 집』, 『별을 의심하다』 등과 산문집 『시가 있는 밥상』, 『밥상머리 인문학》,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 『나랑 같이 밥 먹을래》 등을 발표하며 일상과 교육, 관계와 언어를 사려 깊게 탐구해 왔습니다. “초등교사의 전문성은 교과 지식이 아니라 교육 대상인 아동에 대한 이해에 있다”는 소신을 지켜 왔으며, 아이를 단지 ‘덜된 어른’이 아니라 고유성을 지닌 존재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나쁜 아이는 없다』는 어린이에 대한 깊고 따뜻한 시선이 오롯이 담긴 책입니다.
책의 제목처럼, 저자는 ‘나쁜 아이는 없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획일적인 기준과 억압을 들이대는 교육과 사회라고 말합니다. 어른들이 아이의 생각과 표현 방식을 억누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를 듣고 언어를 살려 주는 것이 교육의 출발점임을 말합니다. 교단에서 20년 넘게 저학년을 가르치고, 대학원과 현장을 오가며 아동문학 창작과 연구를 병행한 경험은 이 책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논문과 교육학, 심리학, 아동학, 언어학을 넘나드는 이론적 깊이에, 시인으로서의 감각과 현장 교사의 생생한 관찰이 만나 학술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지닌 드문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나쁜 아이는 없다』는 교육 현장에서 아이를 만나는 교사와 학부모는 물론,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책입니다. 아이를 평가하고 규정하는 대신 인정하고 품는 태도, 서둘러 어른의 기준을 주입하기보다 스스로의 언어와 시선을 지키게 하는 교육의 가치가 책의 곳곳에서 빛납니다. 오인태 선생님은 밥 한 그릇, 운동장 한 귀퉁이, 장난기 가득한 눈빛, 시 한 줄 속에 숨어 있는 아이의 세계를 길어 올려, 그것이야말로 시이자 삶의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나쁜 교육은 있을 수 있지만 나쁜 아이는 없다”는 단호한 문장은, 어린이를 둘러싼 모든 관계와 시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문장을 짧게 끊어 단단하게 엮어낸 필치, 사례와 이론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구성, 그리고 따뜻하지만 명료한 메시지 덕분에 이 책은 읽는 내내 잔잔한 울림을 남깁니다. 시와 교육, 심리와 관계를 한 자리에서 아우르며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과제를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합니다. 『나쁜 아이는 없다』는 아이를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스스로를 나무라며 살아온 어른들에게도 건네는 부드러운 위로이자 단단한 다짐입니다. 교육의 현장과 문학의 자리에서 오래도록 참고되고 이야기될 만한 귀한 자료이자 삶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