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괴물, 팬데믹의 민낯을 파헤치다
팬데믹의 사회적 생산에 대한 고전 신작의 증보판 출간
저명한 활동가이자 작가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그의 책 『괴물의 등장: 코로나19, 조류독감, 자본주의의 전염병』을 통해 감염병 팬데믹이 앞으로도 몇 차례고 다시 발생할 것이며 우리는 감염병의 파도를 막기 위해, 적어도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준다.
2005년 조류독감(H5N1)을 다룬 이전 저서 『우리 문 앞의 괴물: 세계를 위협하는 조류독감』(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Flu)에서 저자는 인수공통 감염병의 생태학적 토양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거대 다국적 기업의 공장식 축산 방식과 글로벌 시장화가 신종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고, 무분별한 개발이 도시 슬럼화를 양산하고, 각 국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빈곤층의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공중보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낱낱이 파헤쳤다.
이 책 『괴물의 등장』(The Monster Enters: Covid-19, Avian Flu and the Plagues of Capitalism)은 이전 책에서의 통찰을 2009년 돼지독감(H1N1)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에 확장 적용했다.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의 재앙이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필연적 재앙이라는 것이다.
예고된 재앙, 보이지 않던 사회적 괴물을 조명하다
자본주의적 먹거리 생산 시스템과 상품 생산 방식은 종의 경계를 뛰어넘는 중증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탄생시켰고, 신종 바이러스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맞물려 취약한 조건에 놓인 이들에게 더 큰 재앙을 낳는 ‘사회적 괴물’을 등장시킨다. 저자는 전염병의 확산은 바이러스의 위험성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증폭되어 초래된 재앙이라는 통찰을 제공한다. 또한 저자는 이윤에만 집착하는 거대 다국적 제약 산업은 팬데믹의 피해와 희생을 줄이는데 되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등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쇠퇴한 공중보건 시스템과 개발도상국의 도시화에 따른 불균형이 전염병의 위기를 어떻게 증폭시켰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의 주장은 전염병이 가진 과학적, 의학적 측면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정치, 경제, 사회적 취약성을 파헤치는 데 있다.
‘K-방역’ 신화 뒤에 숨겨진 그늘
부록으로 수록된 옮긴이들의 해제와 인터뷰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중심으로 ‘성공’ 방역 신화에 안주하지 않고, 그 이면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돕는다. 현직 의사인 역자들은 아무리 기술과 행정이 우수해도 사회의 불평등과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언제든 새로운 팬데믹의 피해가 집중될 수 있다는 날카로운 경고를 던진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보론 성격으로 수록된 「팬데믹의 시대」에서 역자 우석균은 인터뷰를 통해 ‘K-방역’ 신화 뒤에 숨겨진 재난의 풍경을 다시 살핀다. 그는 처음도 아니지만 결코 마지막이 아닌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우석균은 마이크 데이비스의 말을 빌어 우리가 처한 위기들은 “결코 자연적이지 않은” 위기임을 이해하고 그 원인을 분명히 하는 것. 또한 모든 재난들이 더 열악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을 먼저 희생자로 만든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내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요구하고 싸우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