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한 스푼이 세운 제국,
커피 한 잔이 바꾼 중독 경제학
인류의 역사에서 음식은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 문명과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세계를 점령한 중독 경제학』은 설탕, 차, 커피, 고추, 주류 등 인류를 유혹한 먹거리가 어떻게 세계사를 뒤흔들었는지를 경제학의 시각에서 풀어낸다.
1장은 십자군 전쟁이 유럽에 가져온 ‘사탕수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탕수수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설탕은 유럽 귀족의 미각을 사로잡았고, 폭발적인 수요는 카리브해와 남미를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뒤덮게 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피와 눈물이 스며 있다.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를 잇는 ‘검은 삼각무역’은 전 세계 무역의 판도를 바꾸고 산업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2장과 3장에서는 현시대에서도 강력한 중독성으로 음료 시장의 선두 자리에 있는 커피와 차의 이야기를 전한다. 중국의 찻잎은 명·청 시대에 외교와 무역의 핵심 카드였으나 유럽 열강의 찻잎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아편전쟁’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한편, 에티오피아 염소 떼가 발견한 커피는 예배당에서 졸음을 쫓는 음료로 시작해, 런던에 세계 최대 원두 시장을 만들고, 오늘날 ‘루왁 커피’ 같은 희소 상품으로까지 발전했다.
4장에서는 맥주가 일으킨 농업혁명과 럼주가 촉발한 독립전쟁, 미국을 분열시킨 최악의 정책인 ‘금주법’의 뒷이야기를 전한다.
5장에서는 ‘매운맛’의 경제학이 핵심이다. 고추의 매운맛은 ‘고통의 쾌락’을 자극하며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저자는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인간이 매운맛에 끌리는 심리를 분석하며, 매운맛이 산업과 마케팅의 무기가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책의 후반부는 미래로 향한다. 저자는 2200년, 세계 인구 200억 명 시대를 가정하며 ‘합성육의 대중화’ ‘3D 프린팅 식품’ ‘AI 맞춤형 식단’ ‘유전자 조작 맞춤 식품’ ‘농약 잔류 문제의 완전 해결’ 등 다양한 예측을 제시한다.
입안의 쾌감이 부른 전쟁의 역사
“인류가 중독된 건 맛이 아니라, 그 뒤의 권력이었다.”
단테의 ‘연옥’에서는 ‘보지만, 먹지 못하는 벌’이 행해진다. 영혼들은 달콤한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 아래에 서 있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너무 높아 손이 닿지 않는다. 이들은 ‘보지만 먹지 못하는 벌’을 받는 중이다. 이 형벌의 목적은 ‘절제’를 배우고, 욕망의 주도권을 찾기 위함이다.
이는 언뜻 우리가 과하게 탐닉하고 있는 ‘먹방 콘텐츠’와 닮았다. 음식에 중독됐지만 먹을 수 없는 현실 탓에 대리 만족으로 ‘먹방 콘텐츠’를 소비한다. 허기진 속을 달래기 위해, 가짜 식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식사 과정을 염탐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허망한 행동에 열광하는 것일까?
우리는 허기에 주목해야 한다. 이 허기가 몸의 것인지, 마음의 것인지에 따라 중독의 여부가 갈린다. 이미 육체적 허기를 넘어 정신적 허기의 상태가 되었다면 이미 상당한 중독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과연 우리는 이 허기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것일까? 책을 덮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작은 초콜릿은 ‘예의 달콤함’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