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생생한 죽음,
그럼에도 너무나 따뜻한 삶의 이야기!
지금 의료 현장은 자명한 전환점을 맞았다.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고민해야 한다. 그저 ‘연명’만이 목적이라면 상당 시간 늘릴 수 있는 고령자 수명을, 과연 언제 끝낼 것인가. 이 과제야말로 향후 의료의 최대공약수가 될 터이고 의사의 심대한 고민이 될 것이다.
고령자 의료를 다루는 이 소설의 주인공 의사 가쓰라는 환자의 가족에게 말한다. “얼레지는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는데 그 뿌리가 끊어지면 곧바로 시들어버린다. 인간도 이 세상에 뻗어 내린 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면 아직 더 살아갈 수 있고 더 살아가야 한다고.” 그래서 뿌리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환자는 어떻게든 보살피려 하고, 이미 끊어진 상태라고 생각한 환자는 그냥 그대로 병원에서 보내드리는 선택을 권한다.
물론 답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의사는 반드시 고민하여 자신만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는 자기만의 철학이 없으면 의사로서 버텨내기 힘든 시대다. 이것이 문학적 명제이기도 하다면, 의학서는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의료소설, 즉 따뜻한 계열의 의료소설이 더욱 필요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물망초 피는 병원, 아즈사가와》가 갖는 소설적 가치는 상당하다.
“의료는 지금 일종의 한계점에 달한 거야. ‘생’이 아니라 ‘사’와 마주한 한계점이지. 거칠게 표현하자면, 갑자기 늘어난 고령자를 어떻게 살리느냐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죽게 할 것이냐가 문제가 되었어. 안타깝지만 의학계에서는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일부 학회에서 임종까지 지켜보는 가이드라인 비슷한 것이 발표되긴 했지만, 내실 없이 공허한 문장만 늘어놨을 뿐이야. 우리 사회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야. 어떻게 죽어야 할지, ‘죽음’을 똑바로 마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집에서 숨을 거두는 일이 드물어진 지금, 대부분은 인간의 죽음이라는 걸 접할 기회가 없어. 그러니 생각할 기회도 없으니 무관심할 수밖에.”
대체로 무관심한 ‘죽음’에 대해, 적어도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게 하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각자의 ‘지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