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암산인 시집(圃巖散人 詩集)》은 고종 갑신(1890) 정월 15일, 구한말(1876~1910)의 격변기에 태어나 경술국치(庚戌國恥), 해방과 건국,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혼란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유학자 포암산인의 학문과 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귀중한 문헌이다. 포암 선생은 운림정사(雲林精舍)를 세우고 학당을 열어, 어려운 시국 속에서도 오로지 학문과 인재 양성에 헌신하며 유학의 전통을 지켜나갔다.
이 시집은 포암산인의 한시 창작과 지역 유림의 교유(交遊)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총 130수에 이르는 작품은 오언절구·칠언절구·오언사율·칠언사율·오언배율 등 전통 한시의 다양한 형식을 고루 수록하고 있으며, 기행, 기념, 자경, 헌작, 애사, 충효, 역사, 애국, 사당, 누정, 인물 등 주제 또한 폭넓어 향토사적 가치도 높을 뿐 아니라 포암 선생의 학문관과 삶의 철학, 그리고 당대 지역 유림 공동체의 교유와 정신세계를 생생히 엿볼 수 있다.
특히 운림정사를 비롯해 장례정사(藏禮精舍), 수장정사(壽牆精舍) 등 선생이 직접 세우거나 머물렀던 공간들은 향촌 사족층(士族層)의 내실 있는 학술 활동과 지역 유림 네트워크의 실상을 잘 보여 준다. 죽포(竹圃), 균파(筠坡), 풍양(楓陽) 등 여러 문인과의 차운과 화운은 시문이 단순한 문학 창작에 머물지 않고 성리학적 의리와 교유 정신을 실천하는 통로였음을 말해 준다.
무엇보다 이 문집이 지닌 큰 의미는 후손의 손끝에서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엮은이는 포암 선생의 손자로서, 1947년에 태어나 혹독했던 유년기의 무릎교육과 할아버지의 완고함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정신과 철학이 자신 안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운림정사는 소실되어 흔적마저 찾기 어렵지만, 유고(遺稿)는 활자로 되살려졌다. 《포암산인 시집》은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지켜 온 학문과 선비정신이 한 가문의 혈맥 속에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증언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한시집을 넘어선다. 삶과 시, 자기 성찰을 통한 유흔遺訓과 철학이 한데 어우러진 이 시집은 한 시대를 넘어 후손에게로 전해지는 정신의 기록이자, 사라진 운림정사를 다시 세상에 되살려 낸 ‘부활의 문집’이라 할 만하다.
엮은이는 오랜 세월 준비 끝에 이번 《포암산인 한시집》을 펴내며 원문에 상세한 음독과 주석을 덧붙여 한문 해독이 어려운 일반 독자에게도 이해의 폭을 넓혔다. 《포암산인 사고(圃巖散人 私稿)》 하권(散文集)의 육필본을 부록으로 함께 묶은 것은 일반 독자층을 위한 의도라기보다, 원고의 사장을 막고 학계 연구자들을 배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근대 전환기 지식인의 학술 활동과 선대의 학문·가치관이 어떻게 계승·변용되었는지를 연구하고자 하는 학계 연구자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전통 지식인의 문집이 후손의 손으로 정리·출판되어 학문과 기록의 단절을 막고 선조의 뜻을 잇게 된 것은, 오늘날 전통 한문학과 향토 유학 연구의 귀중한 사료로서 이 문집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 시집을 통해 독자들은 근대 전환기의 한 유학자가 남긴 시편 속에서 유교적 가치관과 유학자(儒學者)의 내면세계를 함께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개인의 기록이 곧 역사이며, 역사는 다시 한 시대의 문화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