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맑베뒤짐(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짐멜)’의 사회학적 상상력
ㆍ살기 좋은 신도시 동탄의 자살률은 왜 높을까?
ㆍ계획도시에서 발견한 현대인의 소외와 절망 _ 뒤르켐의 자살론
ㆍ강남의 초대형 교회는 어떻게 부동산 제국이 됐을까?
ㆍ교회, 정치, 자본이 만나는 성장연합의 진실 _ 로건과 몰로치의 성장기제론
ㆍ김포골드라인의 지옥철은 누구의 책임일까?
ㆍ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만든 교통 지옥 _ 카스텔의 집합소비론
익숙한 공간에 숨겨진 낯선 진실 - “개인의 불행이 아닌 구조의 문제를 찾는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도시라는 익숙한 공간 속에 감춰진 구조적 진실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동탄 신도시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간 148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며, 신도시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치솟는 집값과 치열한 경쟁, 약화된 공동체는 시민들을 고립으로 내몰았고, 이는 뒤르켐이 말한 ‘사회적 고립이 낳는 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울 강남에는 교인 수 1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가 다섯 곳이나 존재한다. 강남구의 유종교율은 인구 대비 58.1%로 서울 최고 수준이며, 이들 교회는 초대형 부동산을 기반으로 종교의 차원을 넘어 지역 권력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김포 골드라인의 ‘지옥철’ 문제 역시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누적된 도시 인프라 부족이 빚어낸 구조적 결과다.
이 책은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짐멜 같은 고전 사회학자와 시카고 학파의 도시사회학 전통을 토대로, 일상 공간을 사회 구조의 차원에서 새롭게 읽어낸다. 신도시, 교회, 지하철과 같은 장면들은 단순히 현실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권력과 갈등, 연결과 고립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 도시와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달라질 것이다.
고전에서 현대까지, 33인의 사회학자가 들려주는 도시 이야기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와 같은 고전 사회학자부터 기든스, 바우만, 카스텔 등 현대 사회학자까지 33명의 핵심 이론을 현대 도시 현상과 연결시켜 설명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의 소외론은 ‘빛나는 도시의 피곤한 노동자들’을 통해,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도시의 빅브라더 CCTV’를 통해 드러난다. 리처의 맥도날드화 이론은 ‘프랜차이즈 도시’ 현상으로, 강서구 빌라왕을 비롯한 대도시의 사기 범죄는 머튼의 범죄사회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한국 도시의 특수한 현상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불안한 도시 청년의 삶을 바우만의 ‘액체 근대’ 개념으로 살펴 보고, 88올림픽과 도시 개발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생생한 한국 사회의 맥락을 담은 사례들은 독자들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사회학적 시각을 제공한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학군 열풍까지, 한국 도시만의 독특한 현상들
전 국민의 60%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나타나는 층간소음 갈등과 관리비 분쟁은 단순한 이웃 문제가 아니라 개인화된 주거 문화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학군지’라는 독특한 용어로 대변되는 교육 열풍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와 문화자본론으로 설명되며, 강남 8학군과 목동, 분당으로 이어지는 교육 이주는 계층 재생산의 공간적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전세제도, 출퇴근길의 지옥철, 명품 열광 같은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한국 도시만의 고유한 사회적 산물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상들을 사회학 이론과 연결해 분석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동시에 보편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일상을 새롭게 보는 힘, 도시에서 살아가는 실용적 지혜
이 책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도시 생활의 실용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의 어색한 침묵을 고프먼의 연극학적 사회학이나 그래노베터의 약한 연결 개념으로 이해하면, 그 순간은 더 이상 불편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 카페에서 자리를 선택하는 무의식적 행동도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가핑클이 말한 사회적 규칙의 결과라는 점을 알게 되면,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출퇴근길 지하철의 혼잡함을 개인의 불운이 아닌 도시 시스템의 문제로 해석하면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학군지 이사에 대한 압박 역시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 이해할 때 보다 현명한 선택이 가능하다.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 방문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베블런이 말한 과시적 소비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SNS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 소비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30개 장으로 구성된 도시 사회학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총 3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일상에서 도시 보기 - 집과 동네’에서는 우리 집, 아파트, 동네라는 가장 친숙한 공간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생활과 이웃 관계, 주거 계급의 문제를 다룬다.
2부 ‘사회에서 도시 보기 - 도시와 이동’에서는 교통, 직장, 학교, 상업공간 등 도시인의 일상적 이동 경험을 통해 도시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분석한다.
3부 ‘세계에서 도시 보기 - 사회와 세계’에서는 지역 정치, 종교, 미디어, 글로벌화까지 도시를 둘러싼 거시적 사회 현상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각 장은 구체적인 장소나 상황에서 시작해 관련 사회학 이론을 소개한 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적용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장에는 저자 자신을 투영한 평범한 도시인 ‘김 씨’가 등장해 독자와 이론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현대 도시 문제와 미래 전망을 읽는 사회학적 통찰
이 책은 단순히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도시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이론은 현대 도시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드러내며,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 개념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인간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도시 생활을 설명한다. 또한 사스키아 사센의 세계도시론은 글로벌 자본 흐름이 서울, 도쿄, 뉴욕 같은 메가시티를 어떻게 재편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산층이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보여준다.
서울의 메가시티화 과정은 한국 도시 발전의 특수성을 잘 드러낸다. 1960~70년대 ‘불도저 시장’ 김현옥은 강남 개발과 대규모 도로 건설을 통해 서울을 초대형 도시로 확장했다. 이후 급속한 팽창은 서울을 넘어 김포, 파주, 남양주 등 외곽 신도시로 이어졌다. 서울의 높은 집값과 과밀을 피해 이주한 주민들이 교통 인프라 부족과 열악한 생활 여건에 시달리는 모습은 ‘메가시티 서울’의 또 다른 그림자다. 출근길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 골드라인은 이러한 문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반면 2010년대 박원순 시장은 도시재생, 공유경제, 사회적 약자 배려 정책을 통해 ‘사람 중심 도시’를 지향하며 메가시티 서울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다.
이 책은 스마트시티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제시한다. 저자는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개념을 빌려 기술과 데이터가 지배하는 미래 도시가 인간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억압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동시에 인간 중심적 도시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현재의 도시 발전 방향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 장에서 제시되는 앤서니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한다. 도시는 우리를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가 도시를 만든다. 이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독자는 도시의 수동적 거주자가 아니라 더 나은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능동적 주체임을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은 도시 사회학의 실천적 의미를 일깨우며, 미래 도시를 향한 희망적 전망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