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범죄’나 ‘질환’이 아닌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다.
세상이 애써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름이 아니라 증상으로만 불리던 사람들의 사연을,
죄의 무게가 아니라 아픔의 언어로 기록하고 싶었다.”
종종 세간의 이목을 끄는 사회면 소식에 오르내리는 뉴스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바로 ‘정신질환’이다. 대중매체는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정신질환 범죄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극적인 키워드와 피상적 분석을 다급히 쏟아내며 일반이 느끼는 공포감과 우려를 부채질한다. 심지어 모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데 정말로 정신질환자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예비 범죄자일까? 피해자에게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잔혹한 사이코패스일까? 혹은 독립적으로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애처로운 환자에 불과할까? 사회적 돌봄과 체계적 지원이 절실한 소외받는 대상일까? ‘환자’이면서 동시에 ‘범죄자’인 이들의 이중 정체성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정신전문간호사이자 범죄심리사로 오랫동안 교도소 현장에서 정신질환 범죄자들과 면대면으로 상담해온 작가는 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는 한편으로, 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얼굴도 모르는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인다고 고백한다. 범죄자를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은 생각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들 또한 평범한 인간이며 또 다른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작가가 느끼는 마음의 모순은 배가된다. 입에 담기 힘들 만큼 잔악한 범행 수법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살인자, 어린 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친모, 아버지를 죽이고 수감된 딸, 두 딸을 성폭행한 친부……. 극도로 위험하고 끔찍한 뉴스 속 범죄자들은 상담을 통해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로 치환되고, 그들의 서사를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는 동시에 작가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은 끔찍한 범죄자를 대한다는 방어적 태세를 누그러뜨림과 동시에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들의 그림자 뒤에 가려진 범죄의 피해자들이 느끼고 있을 고통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게 다가왔다.
사실 정신질환자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죄율 자체 또한 일반인의 범죄율보다 높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범죄 사건은 어떤 이유에서든 주목을 끌고, 이로 인해 강력 범죄 발생 시 언론에서 ‘정신질환’을 쉽게 언급하고, 이것은 다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경향을 띤다. 심한 경우 이들이 애초에 보통 사람과 다른 별종의 존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질환’이라는 단어가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환자’로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그저 ‘위험하므로 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편견에 옳다거나 그르다는 식의 답을 내지는 않는다. 다만 현장에서 작가가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대하며 겪은 내면의 깊고 어두운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과정에서 ‘범죄’에 이르게 되는지를 담담하고도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는 ‘범죄’와 ‘질환’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아득한 아픔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정신질환 범죄자들이 직접 그들의 온 삶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범죄 예방과 사회 안전으로 나아가는 해법까지도 모색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작가는 오늘도 높고 낯선 회색빛 담장 속으로 용기 있게 뛰어든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오래 머물기 위해, 그들을 다시 세상과 이어줄 실낱같은 희망의 끈이 되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