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 사전 ]
어느 날 정우의 학교에 인간을 닮은 정밀한 모습을 담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휴머노이드 인공지능을 장착한 ‘희망’이라는 로봇이 전학생으로 오게 된다, 로봇인 희망이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링 해서 그 행동을 수치화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희망이에게 다가가 친근함을 나타내지만 외톨이인 정우는 눈치만 볼 뿐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희망이는 정우가 영민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집에서는 형에게 밀려 부모님으로부터도 소외당하고 학교에서도 늘 외톨이였던 정우는 로봇인 희망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고 희망이는 정우의 그런 감정을 인간들의 ‘우정’이라고 모니터링 한다.
“나도 비밀을 말해 줄게. 나는 아이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서 감정 사전을 만드는 중이야. 너의 감정 상태는 외로움이야.”
희망이가 말했다.
“그래도 너랑 이렇게 하룻밤 같이 보내서 오늘은 외롭지 않아. 고마워.”
희망이의 모니터가 물결쳤다.
나는 옆에 누운 희망이를 가만히 안았다. -본문 29쪽
[ 내 남친은 내가 지킬 거야 ]
범준이가 5학년 내내 왕따를 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부모님은 친구도 없이 외롭고 힘들었을 범준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차세대 인공지능 로봇 ‘리오’를 선물로 사주었다.
최첨단의 양자칩이 들어 있는 인공지능 로봇, 리오는 뇌 알고리즘이 인간과 비슷하게 짜여져 주인과의 밀착 생활을 통해 인간의 아이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입력된 로봇이다. 겨울 방학 동안 리오와 지내면서 범준은 그동안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6학년이 되지만 또다시 지난 일 년 내내 괴롭힘을 당한 동주와 같은 반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런 범준이 앞에 천하무적 하리가 나타남으로써 하리는 범준이의 새로운 보디가드이자 여친이 되고, 자연스럽게 리오와 지내는 시간도 줄어든다. 리오는 그런 범준이에 대해 학습화된 서운한 감정을 느끼면서 범준을 되찾기 위해 하리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니. 그건 좀 억지인 것 같은데. 너는 그냥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는 것뿐이야.”-본문 60쪽
[ 또나의 응원 ]
밤 11시 무렵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게임을 하던 준하의 핸드폰이 갑자기 먹통이 되어 버렸다. 동시에 엄마의 핸드폰도 고장이 나고 티브이도 전원이 들어왔다 나갔다 이상한 현상을 일으킨다. 그리고 얼마 뒤 티브이 화면 아래로 “태양풍을 만난 혜성의 영향으로 잠시 전파 수신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자막이 뜨면서 핸드폰도 티브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날 밤 준하는 잠을 자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에 눈앞 거울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아이가 서있는 것을 보게 된다. 놀란 나머지 뒤를 돌아보지만 어두운 거실만 보일 뿐, 준하는 꿈결에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잠이 든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준하의 방에 있던 피규어의 순서가 바뀌고, 자주 입던 옷이 사라지고. 심지어 머리 모양이 바뀐 자신을 봤다는 친구들이 나타나면서 준하는 점점 더 혼란에 빠져든다. 마침내 준하는 자신의 방에서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아이가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비로소 또 다른 자신과 맞닥뜨린다. 도플갱어가 아니라면 과연 이 아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또 다른 나를 향한 응원의 끝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
녀석과 나는 둘 다 나다. 온 우주에 흩어진 또 다른 나의 모습. 나중에 의사가 될 수도, 천문학자가 될 수도, 만화가가 될 수도 있는. 무수히 많은 평행우주가 존재하듯 무수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나. -본문 93쪽
[ 도망가지 마 ]
나는 늘 꿈속에서 밝은 빛을 피해 달아나고 도망 다니느라 바쁘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머리는 띵하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피해 다니는데 꿈에서도조차 도망 다니는 꼴이라니 학교 갈 생각만 하면 언제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학교에 가도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선생님조차 나에게 관심이 없다. 마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아이들은 나를 괴롭히고 놀린다. 그 중에서도 영호에게 나는 장난감 같은 존재다. 마음대로 주무르고 던지고 으깨고 고함친다. 그것도 티내지 않고 아주 은밀하게.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요 며칠 누군가 내 책상 속에 노란 국화 한 송이를 두고 간다. 책상 속에 몰래 선물이나 꽃을 두고 간다는 건 분명 좋아한다는 고백인데, 말도 안 된다. 나를 좋아할 여자아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책상 서랍 속에 국화 한 송이가 들어 있다. 나는 누가 꽃을 두고 가는지 알아보고 싶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내 책상 서랍 속 노란 꽃을 두고 간 아이를. 소름끼치는 마지막 결말의 반전, 아프지만 따뜻한 이야기.
“빛이 자꾸만 따라왔는데 나는 자꾸만 도망갔어. 난 두려워서 피해 다녔어. 하지만 꿈속에서 알았어. 도망가지 말고 용기를 냈어야 한다고.”-본문 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