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에피소드에는 과학을 향한 끈기, 실패를 견디는 품격, 그리고 생명에 대한 시적인 경외가 깃들어 있다.”
_정재승(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교수)
“그의 도전 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올바른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온 탁월한 과학자의 삶이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리라 확신한다.”
_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찰스 다윈의 마지막 저술이 지렁이에 관한 책이었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진화의 거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연구한 마지막 대상이 벌레였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인간과 벌레는 생각보다 훨씬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다룬다.
『사람이 벌레라니: 예쁜꼬마선충으로 보는 생명』은 길이가 1mm 남짓한 작은 벌레, 예쁜꼬마선충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 이준호는 한국에서 예쁜꼬마선충 연구를 개척한 1세대 과학자로, 30년간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물학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사람이 벌레라고?
1mm 인간, 예쁜꼬마선충
하지만 사람이 벌레라니. 거부감이 들 만하다. 과거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지만, 실용성과 비용 등의 문제로 큰 반대에 부딪혔다. 이에 과학자들이 출발점으로 제시한 것이 염기 서열 면에서 인간의 맛보기 격인 예쁜꼬마선충이었다. 선충의 유전체를 모두 밝힐 수 있다면, 인간에게도 확장해 적용할 수 있다고 반대론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예쁜꼬마선충은 유전체 전체 정보가 알려진 최초의 동물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고,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인간과 예쁜꼬마선충은 유전자의 절반가량을 공유한다는 사실까지 밝혀졌으니, 이 정도면 사람이 벌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복잡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열쇠가 1mm 벌레 안에 담겨 있다.
작은 벌레가 인류의 과학을 바꿨다
예쁜꼬마선충은 단순해 보이지만 네 차례나 노벨상 연구의 주인공이 된 놀라운 생물이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세포 계보,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 RNA 간섭 현상, 형광 단백질 실험. 생명과학의 핵심 개념들이 모두 이 작은 벌레를 통해 밝혀졌다.
왜 하필 예쁜꼬마선충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작고 투명하며, 세포 수가 1,000개도 되지 않지만, 한 생명체가 가진 모든 기본 요소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의 수정란에서 시작해 네 번의 탈피를 거쳐 성체가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동물은 흔치 않다. 그래서 시드니 브레너를 비롯한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대성공이었다. 예쁜꼬마선충은 세포 계보를 완벽히 추적할 수 있는 첫 번째 동물이 되었고,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 개념을 확립해 노벨상을 안겼다. RNA 간섭 현상을 발견하게 만든 것도, 녹색 형광 단백질(GFP) 기술을 실현시킨 것도 모두 이 벌레였다.
한국 선충 연구의 30년, 그리고 미래
이 책은 과학 교양서이자 연구자의 자서전적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1995년 한국에 처음으로 예쁜꼬마선충 연구실을 연 과학자다. 연구실을 세운 이후 지난 30년간 겪었던 실패와 성공, 한국 기초과학 연구의 도전과 희망을 솔직하게 담았다. ‘닉테이션’이라는 특이 행동 연구, 비교 커넥톰 프로젝트, 텔로미어 유지 기전 발견 등 한국 연구자들이 거둔 세계적 성과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진다. “선충으로 플라시보(위약) 효과를 풀 수 있을까?”, “꼬마선충도 가르칠 수 있을까?”, “형형색색의 선충을 만드는 시대가 올까?” 이런 질문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과학을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매화와 같은 것”이라 말한다. 인간에게 이익을 입증하기 전에도 호기심과 끈기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과학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몸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