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란 무엇인가
조선시대 양반들은 지배계층임을 과시하고 자아실현을 나타내기 위해 유교(儒敎) 덕목이 반영된 표준적인 주거를 조영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부부유별, 부자유친, 장유유서 등에 따라 주거 공간을 종교적으로 성속(聖俗), 기능적으로 남녀(男女), 계층적으로 상하(上下), 가족생활과 접객을 위해 공사(公私)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주택을 무한정 분리할 수는 없기에 효율적인 해결책이 요구되었고 그것이 바로 사랑채였다.
또한 조선시대 사랑채는 많은 가족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는 대가족제, 넓은 범위로 교류하고 유희를 추구하는 양반사회, 씨족마을로 긴밀한 협동을 중요시하는 마을구조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소산이었다. 사랑채는 주택 내에서는 상이한 영역을 분리시키면서 동시에 연결하는 하나의 매개공간이자, 주택 외에서도 종족․문중․마을을 연결시키는 결절점(結節点)이었다. 여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풍류(風流)를 더했다. 따라서 사랑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우리나라 주택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길이라 하겠다.
사랑채의 시작과 종류, 구성을 총망라하다
이 책의 내용은 5장으로 구성되어 사랑채의 형성배경과 성격, 사랑채의 공간구성, 지역별 사랑채, 계층별 사랑채, 행태별 사랑채를 다루었다. 1장 사랑채의 형성배경과 성격에서는 조선시대 유교가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16~17세기를 즈음하여 사랑채가 안채와 분리되면서 정착되고 확장되는 과정과 성격을 살펴본다. 2장 사랑채의 공간구성에서는 안채가 주택의 중심으로서 전통적인 실 구성과 성격을 유지한 것과는 달리 사랑채는 기능변화에 따라 확장 혹은 생성이 두드러진 양상을 다루었다. 그리고 3장, 4장, 5장에서는 각 지역의 풍토와 사회 환경의 차이로 유교 특성이 지역별 계층별 행태별 차이를 가지는 것을 사랑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더 나아가 연구대상 주택(총 625호)이 분포하는 한반도 이남인 경상도, 경기·충청도, 전라도, 강원도의 지역별 특성을 살펴보고, 전체 실례수의 과반수(54%)를 차지하는 경상도는 좀 더 세분하여 고찰하였다. 그리고 거주자(조상)의 계층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경우에는 사대부층(士大夫層), 향반층(鄕班層), 부농층(富農層)으로 분류하여 계층별 특성을 비교하고, 사랑채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생활, 접객, 의례를 중심으로 사용행태를 살펴본다.
사랑채 하나에 내재된 심오한 질서
사랑채 하나를 지어내는 일에도 우리 조상들은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모르는 이가 그냥 보기에는 우뚝 솟은 기와집 한 채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심오한 질서가 내재되어 있다. 안채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문을 달 것인지, 담장은 어떻게 두를 것인지, 또 마을과의 관계에 따라 기단의 높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심하게 고려하였다. 또한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등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기후, 생활풍습과 어우러지는 특색이 있었다. 향반층, 부농층, 사대부층에 따라 중점을 둔 것들은 또 다르게 나타난다. 고풍스런 마을길을 따라 들어서 있는 전통주택에 찾아가면 낯섦과 친숙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 안에 깃든 심오한 질서를 이해하게 되면 친숙함은 더 배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