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 디자이너가 감각적인 펜 그림으로
산책하듯 담아낸 산사 7곳 이야기
삼성전자에서 10년 넘게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윤설희 작가가 2019년부터 5년 동안 탐방한 전국 산사 100여 곳 중 가장 각별했던 산사 7곳 이야기를 감각적인 펜 그림으로 담았다.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펜 그림은 아름다운 수묵화를 연상시키며 우리의 시선을 오래 머무르게 만든다. 세밀한 선과 점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일주문을 넘어 산사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공간의 다양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부터 CNN 선정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 중 하나인 경북 영주의 부석사, 도심 한가운데의 산사인 서울의 봉은사까지. 개성 있는 그림과 재능 있는 디자이너만의 색다른 시각으로 쉽고 친절하게 풀어낸 산사 7곳의 이야기는, 마치 함께 산책하며 산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마음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인상을 준다. 더불어 곳곳에 세심하게 배치한 산사의 건축물과 불교 용어에 대한 손쉬운 해설은 건축을 잘 몰라도, 종교가 없어도 누구나 산사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즐길 수 있게 한다.
대기업 10년 차 디자이너가
네모난 공간을 벗어나 산사를 찾은 이유
윤설희 작가는 5년간 100여 곳의 산사를 방문해 한국 고건축과 ‘나만의 공간’을 탐구했다. 인상 깊은 산사는 여러 번 방문해 더 깊이 들여다보았고, 외국의 산사도 방문해 한국 건축만의 정체성을 직접 확인했다. 그가 공간 탐구에 몰두한 이유는 원룸, 카페, 사무실…… 도심의 작고 네모난 공간을 벗어나 나만의 집을 짓고 싶어서였다. 내 삶이 온전히 놓일 나만의 공간을 짓기 위해서는 내가 발 디딘 공간과 스스로를 먼저 알아야 했고, 작가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으로 전국의 산사를 꼼꼼하게 걸었다. 10년 차 직장인인 작가가 수년 동안 주말마다 숲속의 유서 깊은 공간을 취재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주말엔 산사》는, 도심의 평일에 지친 우리에게 고요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더불어 주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생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내가 진짜 머물러야 할 곳은……”
오래된 건축과 깊은 사유가
MZ 세대에게 건네는 위안과 깨달음
《주말엔 산사》에는 숲속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위안과 깨달음이 있다. 1000년이 넘는 오래된 건축과 깊은 사유는 유한하고 작은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이는 최근 MZ 세대에게 불교가 주목받는 이유와도 통한다. 빠르게 얻고 금방 휘발되는 즐거움에 익숙한 이들에게, 멈추지 않는 경쟁과 불안에 지친 이들에게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불교의 가치들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삶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긴 계단을 올라야 배흘림기둥에 기대서 누릴 수 있는 부석사의 장엄한 소백산맥 풍경, 대자연과 토속신앙 등을 조화롭게 수용한 금산사의 유연함, 투박하고 완성도는 낮을지라도 간절함이 묻어나는 양식과 다양성으로 고유함을 드러내는 운주사의 천불 천탑 등. 작가는 각 산사에서 마주한 건축의 깊이와 선문답이 되묻는 삶의 본질적 질문에 답을 찾아간다. 《주말엔 산사》를 읽는 우리 역시 책 속의 산사에서 마음의 여백을 느끼며 내 삶이 놓일 나만의 공간을 떠올려볼 것이다. 넓고 분주한 도심에서 찾지 못한 저마다의 자기만의 방은 어쩌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