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의 운석처럼 단단하고 신비로운 겐지의 문학
미야자와 겐지의 이야기는 한 번에 읽힐 수 없는 층층의 운석처럼 단단하고 신비로운 결을 지녔다. 첫 대면에선 어린 시절 동화집을 열어 보듯 설렘이 앞서지만, 몇 줄만 넘기면 물리, 천문, 농학, 불교 경구가 겹겹이 나타나 독자를 낯선 차원으로 끌어당긴다.
그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한 농민을 착취하듯 부를 일군 집안에 반기를 들었다. 이후 농민들,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추구하였다. 고등농림학교에서 과학적 농업기술을 익혀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신비롭고 즐거운 이야기를 지어서 그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였다.
1924년 그는 《봄과 수라》와 《주문이 많은 요리점》을 자비로 간행했는데, 이 책들은 그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단행본이다. 작품 속에서 ‘생과 사’의 경계는 사라지고 인간, 동물, 광물, 별들이 하나의 순환계 안에서 호흡한다.
여동생이 병으로 세상을 뜬 1928년, 그는 〈은하철도의 밤〉 개작에 몰두하며 ‘인간 구원의 최후 풍경’으로 별빛 기차를 택한다. 이 작품은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 무한 연대의 문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겐지는 1933년에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계속 이 작품의 개작에 몰두했다.
잊고 있던 마음속 소년을 만난다
〈은하철도의 밤〉, 〈첼로 연주자 고슈〉, 〈주문이 많은 요리점〉은 미야자와 겐지의 대표 작품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외로운 소년 조반니, 악단에서 늘 지적을 받는 연주자 고슈와 숲속 동물들, 숲속을 헤매는 사냥꾼과 정체 모를 동물이 주인공인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환상성’이다.
〈은하철도의 밤〉에서 주인공 ‘조반니’는 꿈결처럼 우주 기차여행을 하다가 기이한 사람들을 만난다. 기차 밖 우주의 풍경은 황홀하고 몽환적이다. 〈첼로 연주자 고슈〉는 늘 지적당하는 연주자 고슈와 그의 집에 밤마다 모여드는 수상쩍은 동물들의 이야기이다. 때론 화를 내고 호통치는 고슈 곁에서 동물들은 기괴한 모습을 보이지만 선량한 마음들은 숨길 수 없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 또한 꿈속을 헤매듯 환상적이며 마지막의 대반전은 뒤통수를 맞는 듯하다.
작품의 유명세에 비해 미야자와 겐지의 삶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 문학사의 특정한 시인과 소설가가 떠오른다. 그가 쓴 초기 시편에는 토양 PH, 니켈강, 은하수 좌표 같은 과학정보가 시구 속에 날것으로 뛰어들어 온다. 이는 ‘시인 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짧은 삶 동안 가난한 농민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 속에는 ‘심훈의 상록수’가 겹쳐 보인다. 나아가 청빈과 가난을 벗한 그의 구도자 같은 삶과 시, 특히 〈비에도 지지 않고〉를 읽다 보면 ‘윤동주의 서시’가 어른거린다.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시와 소설 같았던 미야자와 겐지.
일본 환상문학의 본류인 그의 작품들을 읽으며, 잊고 있던 마음속 소년, 나를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