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각박한 자본주의적 환경 속에서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사회적 관계를 맺고 지속해갈 때 비로소 건강하고 상식적인 사회질서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바로 그런 인정과 신뢰의 공간이 ‘농민시장’인데, 농민이 키우고 직접 판매하는 작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 또한 자신이 생산한 작물 및 가공식품의 품질을 소비자들이 알아봐줄 것이라는 농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존립할 수 있는 것이 농민시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상호 신뢰가 실제로 있는지,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이런 신뢰를 가능하게 하는지 등을 현지조사를 통해 직접 눈에 담고, 농민 판매인과 농민시장 관리자, 소비자를 실제로 인터뷰하며 확인했다. 또한 영국 농민시장을 보다 다채롭게 조망해보기 위해 칼 폴라니, 마크 그라노베터 등의 배태성 이론, 피에르 부르디외, 제임스 콜먼, 로버트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론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이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농민시장 연구가 갖는 사회학적 함의를 공동체 위기의 맥락과 관련지어 짚어보고, 농민시장을 조망하는 이론적 렌즈로서의 배태성과 사회적 자본 논의를 검토하며, 이번 연구의 분석 틀과 연구 방법 및 분석 자료 등을 정리했다.
제2부는 2개의 장에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농민시장Edinburgh Farmers’ Market을 사회적 자본과 배태성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제3부는 영국 최초의 농민시장으로 유명한 배스 농민시장Bath Farmers Market,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의 대표적 농민시장인 리버사이드 농민시장Riverside Farmers Market, 영국의 유일한 유기농 전문 농민시장으로 평가되는 런던의 공동체 성장 농민시장농민시장Growing Communities Farmers’ Market을 분석했다.
제4부는 앞에서 살펴본 네 곳의 영국 농민시장 사례조사 결과들을 토대로 영국 농민시장의 실태를 재정리하면서 그 안에 담긴 사회학적 함의를 살펴보며, 이어 영국 농민시장 연구가 한국사회와 우리 농민시장에 주는 함의를 도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우리의 최근 사회 현실은 사회질서의 근간인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잠복해 있던 사회적 불신의 전면적이고 폭력적인 표출은 우리에게 신뢰사회를 열어갈 비상구가 너무나 절실함을 일깨워준다. 폭발적인 사회적 영향력이나 파급 효과를 단기간에 기대할 수 없음에도 사회적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적 공간으로서의 잠재력을 시사하는 영국 농민시장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