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여름방학이 끝난 2학기 첫날, 오컬트 애호가 ‘유스케’와 어느 모로 보나 현실주의자인 ‘사쓰키’, 아직은 존재감이 희미한 전학생 ‘미나’가 학급 신문을 핑계로 마을의 7대 불가사의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셋의 목적은 서로 다르다. 유스케는 괴담 추적이라는 장기를 뽐내고 싶어하고, 사쓰키는 미제사건으로 남은 사촌 언니 마리코의 죽음에 답을 얻고자 하며, 미나는 두 사람의 설전을 한발 물러서 판정한다. 세 사람은 산속 터널과 폐허가 된 종교시설, 댐과 우물 등 마리코가 생전에 남긴 파일 속 장소들을 조사하며 오컬트와 현실이라는 두 가지 가설을 나란히 세우고 서로의 빈틈을 집요하게 논박한다. 그렇게 가설에 가설이 쌓이고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지며 1년 전 마리코의 죽음이 현재를 물들인다. 마침내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일곱 번째 불가사의를 알면 죽는다”는 경고가 차가운 실체를 드러내는데….
현실과 괴이를 넘나드는 단서들…
오컬트와 논리가 맞붙고 공포와 추리가 같은 속도로 달린다
갓난아기가 죽은 이후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S터널의 동승자〉, 폐허에 담력 테스트를 하러 간 친구들이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는 〈영원한 생명 연구소〉, 해 질 녘 미사사 고개의 지장보살을 보면 안 된다는 〈미사사 고개의 목이 달린 지장보살〉, 자살 명소로 불리는 전화부스에서 애통한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자살 댐의 아이〉, 장례식에서 마주친 존재가 죽음을 부른다는 〈산할머니 마을〉, 돌림병이 퍼진 마을에 반드시 있다는 〈우물이 있는 집〉까지… 마리코 언니가 남긴 괴담은 동네마다 있는 여느 ‘도시 전설’과 비슷하다. 하지만 《디스펠》은 괴담을 ‘느낌’이 아닌 ‘논리’로 읽고, 공포를 ‘감상’하는 대신 ‘논증’으로 끌어올린다. 무서움이 먼저 덮치고 추리가 그 뒤를 따라붙는다는 공식을 거부하고, 공포와 추리가 같은 속도로 달려간다.
사촌 언니의 죽음을 밝힐 열쇠가 이들 괴담에 있다고 본 세 사람은 괴담 속 장소들을 직접 찾아 조사하기로 한다. 유스케가 괴이의 개입, 즉 오컬트적 가설을 세우면, 이에 맞서 사쓰키가 현실적, 논리적 설명을 내놓는다. 미나가 두 논증의 허점을 지적하고 판정을 내린다. 가설과 반례, 판정이 반복되며 믿음과 의심, 균형이 자리를 잡아간다. 최근 추리소설에 재미를 붙인 미나는 대표적인 추리 기법들을 들려주며 이해를 보완하고, 독자 역시 자연스럽게 논리의 흐름을 좇으며 두뇌 게임에 동참할 수 있다. 입문자에겐 친절하고 숙련자에겐 빈틈을 찾는 재미를 선사하는 이 같은 추리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초등학생 6학년’이라는 주인공들의 처지이다. 아직 어리기에 먼 곳을 여행하거나 밤에 외출하기가 힘들다. 휴대전화 사용에 제약이 있고 활동비(용돈)도 한정되어 있다. 형사나 탐정이었다면 쉽게 접근했을 CCTV 기록이나 경찰 협조도 손에 닿지 않는 ‘어른의 지름길’일 뿐이다. 세 사람은 철저히 관찰과 가정, 상호 검증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 권한과 이동, 시간과 정보의 제약이야말로 느슨하지만 확실한 《디스펠》의 클로즈드 서클이다.
“특수설정 없이, 현실 세계와 동일한 규칙 안에서 오컬트를 어떻게 그려야 독자가 납득할 것인가가 이번 도전이었습니다. 애초에 본격 미스터리도 독자와 작가 사이에 일정한 이해가 성립되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애매함을 내포한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수설정 미스터리는 거기에 더해 작품마다 독자적인 규칙을 제시하죠. 덕분에 유니크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독자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오히려 ‘본격 미스터리의 애매함’을 역으로 활용해 오컬트까지 포함한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_이마무라 마사히로, 〈올 요미모노〉 인터뷰에서
두려워할 것인가, 이해할 것인가? 믿을 것인가, 납득할 것인가?
룰을 깨는 대신 룰을 확장하는 작가
미스터리 4관왕에 오른 《시인장의 살인》과 《마안갑의 살인》, 《흉인저의 살인》 등의 전작에서 다양한 클로즈드 서클을 보여준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 그의 차기작이 소도시를 배경으로 초등학생들이 활약하는 오컬트 미스터리 《디스펠》이라는 사실은 일본 출판계를 들썩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여러 인터뷰에서 ‘활동적인 미스터리’를 쓰고 싶었다며, “현실 세계와 같은 룰로 오컬트를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를 이번 책의 과제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린 아이들이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특수설정을 덧씌우지 않고, 본격 미스터리가 전제하는 독자와 작가의 암묵적 합의를 정면에서 활용하겠다는 작가적 야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괴담을 현장 검증과 가설 운용의 재료로 삼는, 호러의 외피를 입고 추리의 동력으로 달려가는 이야기가 끝나면 ‘믿는다’와 ‘믿지 않는다’가 아닌, ‘납득한다’와 ‘납득하지 않는다’가 남는다. 본격 미스터리는 ‘논리로 이해시키는’ 게임이다. 이마무라는 여기에 ‘오컬트’라는 난수를 투입하고도 게임의 룰을 깨지 않는다. 오히려 룰을 확대한다. ‘본격 미스터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김영민 작가의 극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