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기쁨도 슬픔도 없이 바라보네,
저 너머 영원 속으로 사라지는 행렬을.”
머물지 않는 구름을 따라, 헤세가 좇아간 고독과 갈망
그 마음과 삶의 순례를 담은 산문 선집헤르만 헤세에게 ‘구름’은 하늘과 땅 사이를 떠돌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모든 그리움과 갈망의 은유였다.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는 유독 구름을 오래, 또 깊이 바라본 시인 헤세만의 애착과 감각이 새겨져 있는 선집이다. 초기작 『페터 카멘친트』에서부터 만년의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헤세가 몰두한 구름의 이미지는 “신의 하늘과 가련한 땅 사이에서 떠도는” 물질이자 “영원한 방랑의 상징”이었다. “축복받은 섬”이자 천사로, “때로는 위협하는 손”과 “바람에 펄럭이는 돛”, “이동하는 두루미 무리”로 모습을 바꾸는 구름의 정체성은 헤세 내면 깊은 곳에 자리했다. 늘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여겼던 헤세는 구름 속에서 자신과 닮은 고독과 불안을 발견했다. “푄 폭풍에 휩쓸려 / 나는 지치지 않는 걸음으로 / 구름 낀 삶을 지나왔다.” 낯선 땅과 운명의 격랑이 그를 고향에서 떼어내 멀리 떠돌게 했으나, 그는 구름에게 말을 걸며 삶의 거친 단면에 발을 디뎠다. 구름은 그에게 고통과 외로움을 함께 나누는 형제자매이자, 덧없음 속에서 자유와 해방감을 주는 동반자였다. 그는 구름의 순례자가 되어 세상과의 싸움에서 얻은 상처와 치욕을 안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흉터 진 가슴의 오랜 마음의 상처”를 안고 흩어지는 여름 구름의 행렬을 오래도록 좇아가자 “내가 보았고 내가 했고 내가 겪었던 모든 것이 / 저 높은 구름 행렬 속에서 함께 흘러가네.” 구름은 끝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 잠시나마 스스로를 잃어버릴 수 있는 아름다운 무상함을 주었다. 알프스의 푄 바람과 함께 몰려오는 격렬한 구름부터, 어린 시절 산 정상에서 처음 마주한 드넓은 하늘까지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는 구름을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든 이들이 “부드러운 바람에 실려” “순례자에게 그리움을 일깨우”는 “창백한 은빛”에 젖어들게 할 것이다.
“하늘을 떠도는 구름에 묻노니,
너희의 희망은 무엇이고, 너희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해 흐르는 하늘의 그림자,
구름과 함께 영원의 문턱에 다다른 헤세의 여정
헤세의 시선에 담긴 구름에는 소년 시절의 상실, 방랑자의 지친 발걸음, 계절이 가을로 기울며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가 겹쳐 있다. 헤세는 고통과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인물이었다. 그는 삶에 초연하지 않았고, 매 순간 고뇌의 끝에 구름을 두었다. “너희 방랑자들이여!-우리 또한 방랑자이니.” 이 부름에는 부드러운 동경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잃어버린 시간을 향한 절박함이 스며 있다. “형태도 머무름도 없는” 구름은 헤세의 또 다른 자아였다. 폭풍 같은 세월을 버텨 온 헤세는 구름을 통해 자신을 초월적 차원, 즉 바람(wish) 너머의 궁극적 존재와 연결하려 했다. “나는 대지의 아이일 뿐이다. 나만의 생각과 소망, 걱정 없이 그저 공기와 물, 구름과 파도라는 더 크고 풍요로운 삶에 몸을 맡긴 대지의 아이일 뿐.” 몸과 마음을 자연과 흐름, 영원 속에 맡기는 순간 헤세는 자신의 초월적 세계를 구름에서 발견한다. 구름은 그의 이상을 비추는 거울이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며 떠도는 존재로서 인간의 한계를 넘고 영원과 맞닿는다. 구름과 함께 흘러가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며, 떠돌이로서 맞닥뜨린 풍랑을 거쳐 간 헤세는 마침내 그가 기거할 세계와 존재를 깨닫는다. “그렇게 나의 삶도 시간 속을 속절없이 흘러 / 곧 잦아들다가 은밀히 / 그리움과 영원의 나라에 닿으리.” 구름과 바람, 하늘과 대지 사이에 헤세가 몸을 맡길 때, 우리는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그리움과 영원에 대한 감각을 포착할 것이다.
“실제로 구름은 노래하고 있었다.
노래하면서 날아갔고, 가수인 동시에 노래 그 자체였다.”
하늘과 땅을 잇는 무대 위에서
고향 없는 예술가, 구름이 부르는 예술의 변주곡
헤세에게 구름은 찰나의 예술성이었다. “내가 볼 때, 구름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드는 건 바로 그 움직임이다. 우리 눈에 죽은 공간으로 비치는 하늘에서 거리감과 크기, 공간감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구름이다.” 구름 덕분에 하늘은 끝없는 허공이 아니라 땅과 이어지는 무대가 되고, 지상의 물질을 머리 위 높은 상공으로 끌어올리며 땅에서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하늘을 향한 그리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자연에서 구름의 역할은 예술에서 날개 달린 존재들, 즉 천사와 천재들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다. 스러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을 지녔으나 날개를 펴고 중력에 저항하는 존재들이다.” 지상과 하늘 사이를 오가는 덧없고 변덕스러운 구름은, 더 높은 차원의 존재와 같이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현현하며 인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로 재현된다. “그때 문득 구름 틈새에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나와 / 눈먼 무無에서 세계의 깊이를 끌어내고, / 그것은 창조의 힘으로 (…) 빛줄기는 싹트는 가능성을 둘로 가르고 / 깜짝 놀란 세계는 빛나게 불타오른다.” 순간순간 변화하며 시선이 닿지 않는 먼 곳까지 흘러가는 구름의 신비로움은 인간의 일상을 잠시 멈추게 하고, 세상의 형언할 수 없는 질서를 드러낸다. 구름의 유동적인 움직임과 형태는 시각적 리듬을 만들고,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는 현실과 이상을 잇는다. “그 시절 구름에서 배운 것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형태, 색채, 특징, 유희, 윤무, 춤, 휴식, 그리고 구름이 들려준 지상과 하늘의 기묘한 이야기를…….” 구름은 고향 없는 예술가로서 인간이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진실을 대신 노래했다. 헤세가 느낀 구름의 이상과 환상은 우리에게도 스며들어, 시선이 스치는 순간의 구름조차 한 폭의 예술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