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금기어는 긍정어가 된다.“
증오와 혐오에서 찾은 지적이고 아름다운 표현들
“나는 모든 차별적인 DEI 정책을 폐지하기 위한 조치를 단행했다.”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경제포럼 무대에서 뱉은 이 한마디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언어와 권력의 충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폭발적 선언이다. 그가 ‘절대적인 넌센스’라 폄훼한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는 ‘Woke(깨어 있음)’라는 단어와 함께 현재 미국 사회에서 정의와 포용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일부 극단적인 보수 세력은 이를 ‘좌파의 언어’이자 ‘반미 국적 표현’으로 규정하며 문화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 문화 전쟁의 선봉에 섰다. -프롤로그 중에서
《트럼프 금지어 사전》은 2025년 1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 각 행정부처를 비롯하여 공공기관에서 사라진 단어, 표현들을 개념어 사전의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공공 장소에서 쫒겨난 이 ‘깨어 있는 단어들(woke words)’의 면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주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과 같이 최근 정치, 사회, 교육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어휘부터 교차성, 연대, 고정관념, 불공정, 인종주의, 마이너리티, 선입견, 혐오 발언, 성적 정체성, 확증 편향, 여성, 소외 계층, 배리어, 저평가, 주변화, 기후위기처럼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리는 단어들과 개인의 정체성에 관련된 단어들까지 이른바 긍정어들이 모두 금지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을 기점으로 하여 한국 사회는 세대를 불문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높아졌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쿨'하게 여기던 인식이 변화해 정치와 일상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우리에게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 일련의 사태들은 어떤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단어로 보는 세계, 명쾌한 시사 교양 입문서
공적으로 어떤 단어나 어떤 표현의 사용을 지양하도록 억제하는 정치적 행위가 사회적으로는 무슨 의미를 지니며, 우리 삶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현대 정치에서 언어는 어떻게 무기로 사용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금지한 단어들은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이념과 권력의 충돌이다. 이 책은 그 단어들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고, 왜 특정 진영에서 거부되거나 전유되었는지 설명한다. 그렇다고 이 책에 수록된 170여 개의 단어가 모두 진보적 긍정어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은 본래 중립적인 의미였지만, 미국 극우 진영에서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로 전유되며 금지어 목록에 포함되었다.
당분간 갈등과 대립이 지속될 이 시대를 살아갈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모든 영역에서 이 단어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는 영단어 표현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불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금지어 사전》은 다양한 인문 교양 주제를 입문자의 시선에서 친절하게 다루는 <단어로 보는 세계>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여는 책이다. 정치 뉴스를 보거나 사회 기사를 읽거나 비즈니스를 할 때 이제는 필수로 알아야 할 상식이 된 단어들의 뜻과 실제 쓰임을 살펴보고, 그동안 쓰면서도 막상 뜻은 뭉뚝하게 알던 의미를 핵심 개념에 한정하여 명쾌하게 정리한다.
tvN 교양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미국사 강의로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역사학자 김봉중 교수가 현재 가장 뜨거운 논쟁의 자리에 서 있는 170여 개의 영단어를 공정, 형평, 다양, 건강, 성소수자, 여성, 인종, 환경 등의 10개의 주제로 엮고 그간 우리가 무심코 써온 언어 속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가짜 논쟁에 흔들리고 똑똑하게 생각하는 법
단어를 제대로 알 때 비로소 보이는 세계가 있다. 언어에는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상황을 맥락에 맞게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포용적이고 다층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생각의 기반이 되는 단어를 명쾌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국제 작가 단체인 펜아메리카(PEN America)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금지어 목록은 이미 350개를 넘어섰다. 미국 사회는 이와 관련된 뉴스들로 매일 떠들썩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금지어와 관련된 논란들은 정치적인 의도로 인해 만들어진 가짜 논란이다. 이 논란의 진짜 의미를 꿰뚫기 위해서는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알아야 할 배경 지식들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영단어 학습서가 아니다. 단어의 정의를 넘어, 그 단어가 탄생하고 변화해온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파급력을 함께 설명한다. 금지어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가치들을 이해하는 일이다. 미국을 이해하는 것은 세계의 흐름과 방향을 아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금기시하는 언어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질 가치들의 이름이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목도하고 있다.
가짜 논쟁에 휘둘리지 않고 언어적 교양과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의 언어 논쟁에 기꺼이 참여하길 바란다. 차곡차곡 단어들이 쌓여 세상을 균형 있게 보는 눈이 열릴 것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1. 시사·정치·사회에 관심 있는 인문 교양 지성인
이데올로기 논쟁, 검열이나 언어 통제 이슈에 민감하고 각성 문화(Woke Culture)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또는 이에 대한 반발과 왜곡 문제에 관심 있는 인문서 독자들
2. '지적 전투력'을 키우고자 하는 20, 30, 40, 50대
SNS와 커뮤니티에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고 싶은 독자들과 정치나 사회 담론에 대한 기초 체력을 쌓고 싶은 대학생, 직장인들
3. 언어·담론의 정치에 관심 있는 전문인과 지망생
언어와 권력의 관계, 말이 지닌 정치성과 영향력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고 업무에 바로 적용해야 하는 사람들, AI시대와 다문화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교육자, 언론인, 공무원, 미디어 종사자들
4. Woke라는 용어를 인지하고 관심 있는 문화 감식자
넷플릭스, X(옛 트위터),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화 전쟁(culture war)에 민감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