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왜 이렇게 바쁜가 - 입시가속체제와 가속학교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교육 역시 오랫동안 효율과 성과의 논리에 지배당해 왔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교육의 장’이 아니라 ‘성과의 장’, ‘증명의 장’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하르트무트 로자(가속사회)와 한병철(성과사회)의 사유를 빌어 이러한 현상을 ‘입시가속체제’와 ‘가속학교’라는 개념으로 정립해 낸다.
한국에서 입시는 단순한 제도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질서가 되었다. 입시가속체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의 전 과정이 미래의 성취를 위해 지배당하는 구조를 가리킨다. 이 체제 속에서 시간은 항상 부족하며 존재는 늘 미달 상태로 규정된다. 이런 입시가속체제 위에 세워진 것이 바로 오늘날의 가속학교이다. 가속학교는 단순히 빠른 학교가 아니라 수업, 평가, 행정, 관계, 의사 결정의 모든 층위에서 가속을 내면화한 구조이다. 가속학교에서는 존재를 증명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학생은 점수와 스펙으로, 교사는 수업안과 실적으로, 교장은 보고서와 성과 지표로만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특히 입시가속체제는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과 만나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하고 공공성을 해체시키는 데 일조해 왔다. 이 속에서 존재는 촘촘하게 위계화되고 관계는 파편화되었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입시가속체제에 의해 구조화된 한국 교육의 병리를 진단하고 느림과 공명의 교육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는 그라운드 제로와 4개의 부, 그리고 마무리 선언으로 이루어진다. 각각은 질문을 축으로 이어지며, 빠름의 시대 속에 존재를 지키는 교육의 길을 더듬어 간다.
가장 먼저 그라운드 제로에서 우리는 ‘교육이 시작되는 자리가 아닌 다시 시작되어야 할 자리’에 서 있다는 통렬한 자각으로 출발한다. 고착된 생존 가치 체제, 학교의 외주화로 인한 배움의 상실, 능력주의 심화에 따른 민주적 불평등, 가족개인주의와 사적 소비 구조를 분석하며, 존재가 공적 세계로부터 소외되는 과정을 사유한다.
제1부에서는 입시가속체제와 시간정치의 구조를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기술적 가속, 사회 변화의 가속, 일상의 리듬 해체, 정보의 피상화, 교육의 기능화 등으로 인해 학교가 어떻게 속도에 포획되었는지를 구조적으로 해명한다.
제2부는 ‘가속된 학교’의 현장 진단이다. 학교가 가속 기술, 지표 중심 평가, 성과주의, 능력주의를 통해 어떻게 ‘정치 없는 조직’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동시에 이런 구조가 정서, 공감, 감응, 판단 같은 교육의 윤리적 기초를 어떻게 제거하는지를 세밀히 분석한다.
제3부는 초가속사회에서 기술 가속이 학교에 어떤 충격을 가했는지를 분석한다. 디지털 전환, AI 기반 예측 시스템, 개별 맞춤형 학습 플랫폼, 역량 중심 교육과정은 학교를 ‘정답 있는 감정’과 ‘예측 가능한 배움’의 구조로 환원시키고 있다.
제4부는 시간의 주권적 전환이 가진 의미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느린학교를 다시 상상한다. 시간주권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리듬주권, 여유주권, 의미주권, 정동주권, 행위주권)와 느린학교의 여섯 가지 전환 원리(공명하는 연대, 생성적 공동성, 반복과 서사의 회복, 정동적 배움의 공동체, 감응적 리더십, 존재 역량의 보편화)를 제시하고 교육과정, 교수-학습, 평가, 자치 문화, 정책·기술의 다섯 영역에 걸쳐 느린 민주주의의 설계 원리를 구체화한다. 이는 존재의 시간을 다시 설계하는 학교를 위한 실천적 대안이기도 하다.
마무리에서는 ‘느린 교육 선언’을 통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선언한다. 교육은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며, 존재가 감응할 수 있는 리듬을 복원하는 행위이다. 이 선언은 단지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존재론적으로 다시 상상하려는 느린 사유의 정치적 제안이다.
각 부 말미에는 사유의 혈관들이라는 섹션을 추가하여 주요 개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이론가들의 사유가 저자의 언어로 통합되어 제시된다.
멈춤 없는 학교에서 사라져 간 존재들을 기억하며
이 책은 한국 교육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간의 왜곡, 존재의 소외, 감정의 소진, 관계의 해체를 하나의 사유 흐름으로 풀어내려는 저자의 철학적 응답이다. 저자의 사유는 2023년 여름,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인 박인혜 선생님의 죽음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저자는 박인혜 선생님과 그 이후 잇따른 교사들의 부고를 접하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교사들의 삶 속에 가속과 고립의 병리가 깊숙이 침투해 있었음을 마주한다. 고도의 시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생활 지도와 수업 사이에서 이중의 부담을 짊어진 교사들……. 교사의 정당한 지도를 보호해 줄 제도는 부재했고 교육청과 교장은 침묵했다. 저자는 교사들의 부고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진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폭력과 정서적 방기, 그리고 리더십의 실종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육학자이자 교장으로서 저자의 윤리적 응답은 학교에서의 시간의 구조를 다시 묻는 데서 출발한다.
시간을 되찾는 교육 - 시간주권과 느린학교
교육에서 시간은 왜 중요한 문제일까. 저자는 교육에서 시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배움의 구조를 결정하고 존재의 형식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시간표와 진도, 수업 시수와 시험 일정 같은 형식은 교육과정을 외형적으로 지탱하는 틀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서 작동하는 권력이다. 교육은 존재의 사건이며, 배움은 시간 위에서 일어나는 실존적 만남이다. 입시의 시간정치는 이러한 교육의 윤리를 전도시킨다.
저자가 교육에서 시간의 윤리를 복원하기 위해 소환한 개념이 바로 시간주권이다. 시간주권은 스스로 시간과 리듬을 설계할 권리이자 책임을 의미한다. 시간주권은 존재가 세계와 관계 맺는 고유한 시간 감각을 되찾는 사유인 동시에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의미하기도 한다. 타자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느린학교는 바로 교육에서 시간주권을 실천하는 상상이다. 속도는 통제의 언어지만 느림은 관계의 언어다. 속도는 배움을 경쟁의 구조로 만들지만 느림은 타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함께 구성하는 윤리적 행위다. 느린학교는 가속을 멈추는 학교가 아니라 존재가 회복되는 학교이자 기술에 저항하는 학교가 아니라 기술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는 감각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느린학교가 빠른 사회를 견딘다”는 저자의 통찰과 그로부터 파생한 〈느린 교육 선언〉은 시간의 주권을 박탈당한 모두를 위한 새로운 ‘교육의 사회 계약’이다.